507호 병실에 간호사가 들렀다. 오후 3시에 ‘장 수술 후 회복기 영양관리’에 관한 교육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전갈이다. 퇴원할 날짜가 되었나 보다. 엊그제 입원한 것 같았는데 벌써 여드레가 지나가고 내일이 예정된 퇴원 날이다.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퇴원은 기정사실이다. 옆 병동에서 퇴원예정 환자가 퇴원이 연기되고 보니 은근히 조바심이 생기니 말이다.
교육담당 영양과장은 수술한 환자들과 그 가족을 모아놓고 치료방법, 회복단계별 식사법, 조리요령, 외식요령, 재발 방지를 위한 건강 식단까지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왜, 제대로 먹어야 하는 이유는 영양상으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적정체중을 유지하여 탈수, 장 폐색을 방지함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고 빠른 회복과 체력 증진에 있다.”라고 강조한다. 중증환자의 식요법은 까다롭다. 병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인 것은 거의 같다. 나도 프린트 용지에 열심히 적었다. 음식물을 입을 통해 유입하여 항문을 통해 배출할 때까지 그 통과의례는 생명을 위한 거룩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장육부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쉼 없이 24시간 일을 하는 것이다. 얼마나 부지런하냐? 말이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나의 일이다. 나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다. 6년 전, 아들이 혈액암 판정을 받고 서러워서 남몰래 많이도 울었었는데, 한 가장에 부자가 모두 암환자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나는 늘 아들의 완치를 기원해왔었다. 다행한 것은 아들은 치료가 끝나고 3개월마다 병원에 들러 상태를 확인받는다. 부용산에도 오르고 수영도 하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내년 복학을 앞두고 이곳 저곳 오디션도 보고, 영화도 찍고 바쁘다. “너는 적어도 아비보다는 더 오래 살아야 한다.” 그것만이라도 연공서열을 파괴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비의 간절한 마음이다. 세상은 연공서열이 파괴된 지가 오래되었다. 죽음보다 더 중요한 대사가 어디 있겠는가, 죽음만이라도 나이 순서대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생사에 대한 생각이 병실 안에 가득하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왜 이리 많단 말인가? 병원은 늘 북적댄다. 수술대에 올라 나는 이런 기도를 나에게 했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는 병이라면 아프지 않게 해주시고 살 수 없는 병이라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해주소서.”
의식이 돌아오니 추워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희미하게 아들 얼굴이 보이고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회복실에서 14시간 기다렸다가 병실로 왔다. 하루 이틀 지나자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고 움직일 수가 있었다.
“열심히 운동하세요!” “네” 환자복에 오줌주머니, 피 주머니를 차고 링거를 끌고 복도를 엉거주춤 오가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살기 위한 희망의 몸부림이다. 나 또한 그렇다. 열심히 노력해서 완치된 암환자의 모범 사례를 남기고 싶다.
한편으로는 암에 고마움을 전했다. 너 때문에 나는, 다시 한 번 나를 뒤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나는 지금 특별휴가 중이라 했다. 붉은 단풍도 구경하고 사색을 즐기는 중이라며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태연하게 넉살을 부리기도 하였다.
“너희, 문병 온 김에 장 내시경이나 신청하고 가!” “겁이 나서 못해” 병도 게으른 자에게 온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그렇다. 2년 전, 건강검진 때 몸에 경고음이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경고음을 무시하고 등한시해왔다. 작은 관심만 있어도 병은 조기에 발견하고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건강에 자신하는 사람들이여! 명심하기 바란다. 아내와 아들에게 늘 건강을 강조했던 나 자신, 이제는 건강에 대해서 가족에게 말할 명분이 사라졌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입원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나 자신에 대한 소중함과 사람과 사람의 인연 그리고 나를 뒤돌아보고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의 쾌유를 기원하고 먼 발걸음을 마다치 않고 문병 온 모든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이 세상에 새롭게 태어난 기분으로 반드시 암과 싸워 이길 것이다. 병실에서 맞이한 나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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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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