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13일, 이곳 태풍전망대 일원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를 모색하는 '공정평화통일국민연대 2026 통일대학'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통일대학학생들과 해설사의 열띤 토론 소리가 가을 바람을 타고 들녘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활기찬 현장 한편에서, 한 시민역사학자는 안내판 속 다산 정약용 선생의 초상과 시 구절을 조용히 더듬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까마득한 250여 년 전, 1766년 겨울, 다산의 부친인 정재원(丁載遠) 선생이 연천현감으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다섯 살 남짓했던 어린 정약용은 아버지를 따라 이곳 연천으로 왔습니다. 정재원 현감은 5년여의 재임 기간 동안 백성들의 곤경을 살피고 억울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해 치정(治政)을 펼쳤습니다. 어린 약용은 아버지가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백성들의 송사를 신중히 살피는 모습,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뒷모습을 보며 학문과 위정(爲政)의 참된 목적을 가슴 깊이각인(刻印)했습니다. 연천의 푸른 강물과 너른 들판은 어린 다산에게 세상과 백성을 품는 거대한 교과서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1794년, 서른셋의 청년이 된 정약용은 정조 대왕의 총애를 받는 암행어사가 되어 다시 이 땅을 찾았습니다.
마전, 적성, 그리고 이곳 삭녕을 둘러보던 다산의 마음은 참담했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애지중지 가꾸었던 고을이었건만, 관리들의 수탈과 탐학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우화정(羽化亭)에 올라 굽이치는 임진강을 바라보던 다산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푸른 시내 모래톱 싸고도는 곳, 붉은 정자 돌머리 위에 서 있네... 가난한 시골 마을 수심이 서려, 더 오래 머물 생각 나지 않네.'
그는 우화정(羽化亭)에 올라 탄식하며 시를 읊었습니다. 왕의 임무를 띠고 찾아왔으나 당장 백성들의 고단함을 다 덜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그리고 아버지가 다스리던 시절의 따스했던 연천을 떠올리는 아들과 공직자로서의 번민이 임진강 강물 위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하지만 다산은 실의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그날의 삭녕에서의 결의는 훗날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라는 위대한 위민 철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수강생 여러분들, 이제 제2세션 발표 시작합니다!" 학생들과 해설사의 힘찬 목소리로 현재로 돌아왔습니다. 다산이 백성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강물을 바라보았던 바로 그 삭녕 (朔寧)땅, 우화정이 서 있던 임진강변의 산자락 위에서 이제는 남과 북의 미래를 논하는 '통일대학'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다산이 꿈꾸었던 '백성이 태평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세상'과 오늘날 우리 통일운동가들이 갈망하는 '막힌 길이 열리고 평화가 흐르는 세상'이 한데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태풍전망대 너머로 북녁하늘의 태양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옛 삭녕의 찬 바람은 여전히 임진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지만, 그 바람은 더 이상 탄식의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산의 실학 정신과 백성을 향한 애민정신이 공정평화통일국민연대 2026년 오늘, 통일대학을 찾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며 먼 북녘 땅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밝혀주고 있었습니다.
< 김남영 / (사)공정 평화 통일 국민연대 포천시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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