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는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화려한 외출" 이라는 영화가 많은 관심 속에서 상영되고 있다. 1980년에 일어난 민족사적 비극이라고 볼 수 있는 계엄군에 의한 양민학살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오랜 독재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이 쿠데타에 의해서 좌절되었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또한 과거사 진상위원회는 그 당시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발포명령이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무리 계엄 상황이라 하더라도 끔찍한 살인행위가 있었고 그 범죄에 대한 심판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인간 사회가 가져야할 시적 정의이다. 우리나라의 고대소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주제가 "권선징악(선은 장려하고 악은 징계함"인 것은 이 도덕적 가르침이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최대공약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역사적 비젼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어느 시민이 고백하였듯이 영화를 보고서야 시민들의 희생이 진짜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에 의한 왜곡된 인식은 그 사건이 단지 불법적으로 일어난 난동으로 해석을 하던 매체의해서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광주항쟁이 권력욕에 사로잡힌 일부 정치군인들이 자행한 사건이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맥베스는 외국과의 전쟁에서 훌륭한 전공을 세운 용감한 장군이었지만 덩컨왕이 왕자 말콤을 후계자로 발표하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광야에 마녀들에게 전해 들었던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부인과 함께 음모를 꾸민다. 그는 격려차 자신의 성에 들른 덩컨 왕을 자신의 칼로 찌르고 반역에 성공한다. 한번 저지른 살인은 또 다른 살인을 낳게 되어 오랜 친구인 뱅코를 비롯해서 무고한 맥더프 부인과 아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이러한 살인에 대해서 셰익스피어는 두 가지 복수의 형태를 보여준다. 하나는 맥베스나 맥베스 부인이 겪는 양심에 의한 죄의식에 의한 내적인 파멸이고, 또 하나는 맥더프에 의한 외적인 보복이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자발적인 죄의식을 느낀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이미 "공중을 달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역마들에 의해 자신이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두려워한다. 그는 왕을 시해하고 난 후에 엄청난 심적 고통을 받고 "마음은 고문을 받고 있는 듯 괴롭고 아프다"고 호소한다. 이런 고통은 맥베스 부인 또한 피할 수 없으며, 그녀는 "모든 일이 헛수고다, 허망할 뿐이다. 뜻이 이루어져도 만족을 얻을 수 없잖은가. 살인을 하고 꺼림칙한 기쁨에 사로잡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살해당하는 쪽이 더 낳겠다"라고 토로한다. 결국 맥베스는 자신이 죽인 유령의 환영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는가 하면, 맥베스 부인은 불면과 몽유병을 앓다가 자살을 하고 만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엄청난 심적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죄에 대한 시적 정의를 나타내고 있다.
맥베스의 살인 행위에 대한 외적인 심판은 그의 칼에 목숨을 잃은 맥더프 부인과 아들에 대한 분노에 의한 보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맥더프는 맥베스의 만행을 피해 있다가 말콤왕자와 더불어 정권회복을 위한 전쟁을 벌인다. 그는 반격에 소극적인 말콤을 부추겨서 맥베스의 숨을 조이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인간의 자궁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마녀의 예언을 굳게 믿는 맥베스에게 자신이 제왕절개해서 태어난 자라고 밝혀 그의 마력의 효과를 제거해버린다. 결국 맥베스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직접적 보복을 행함으로써 또 하나의 시적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외출"이라는 영화는 독재시절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문화에 의한 시적정의 구현이다. 군사독재자들이 아무리 대중매체를 이용해서 감추고 은폐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폭력적 보복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적 행위에 의해서 숨겨진 죄악은 밝혀지고 심판 받고 있다. 억지로 귀를 막아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은폐하였지만, 시민들의 진실에 대한 욕구와 새로운 인식전환에 의해서 진상이 규명되고 내면적인 심판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영화 "화려한 외출"을 보고 "진실로의 외출"을 철저히 경험할 수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