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으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고 1960년6월15일 내각책임제 개정 헌법이 국회를 통과 당일 공포되었다. 국회는 이어 개정 헌법에 따라 국회의원선거법(6월23일 공포)이 개정되어 7월29일 민의원(4년임기) 참의원(6년)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어 내 고향 포천에서도 10명(이기우, 백용기, 이근오, 이시찬, 임대순, 문진교, 김영묵, 김영구, 이해성, 원봉운)이 입후보 민주당 공천의 김영구씨가 10,328표로 당선되었다. 고 김영구의원은(39세) 포천읍 신읍리 202번지에서 포천제재소를 경영하며 천주교 포천성당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당선 후 내무부 정무차관을 역임하였으며 헌정회 운영위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김건(전 대한 알루미늄 상무) 김연(사업) 김준(전 인천 정유 상무) 김정씨등 3남매를 두었으며 발인은 3월22일 9시이고 향년 88세이다.
고 김영구의원은 내무 행정의 정무차관(당시는 차관이 2명 사무차관 등)으로 포천 출신 청년들을 내무부 산하 경찰 공무원으로 추천 봉직케 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 학력으로는 일본 동경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유명대학인 고려대, 동국대 법학부 교수를 역임하는등, 교육계에도 거물이었다.
자유당 독재정부와 맞서는 포천의 재야 민주당 세력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던 유명인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5․16 군사 구데타로 1년도 못되는 단명의 내각책임제 하의 민의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