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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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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고지의 능선은 노인의 굽은 등과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유리창문을 투과한 이른 아침의 햇살이 남영(湳英)의 책상 위를 비추었다. 호를 '비어 있는 배'라는 뜻의 허주(虛舟)로 삼은 뒤부터, 그는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이름들을 비워내고 오직 흙과 사람이 남긴 흔적만을 글로 옮기고 있습니다.
오늘 그의 펜끝이 머문 곳은 철원 평야의 끝자락, 백마고지를 정원처럼 품고 있는 대마리 향군촌마을 이었습니다. 남영(湳英)은 만년필을 내려놓고 낡은 메모 수첩을 넘겼습니다. 그곳에는 지난주 마을 회관에서 만난 백발의 1세대 개척민, ‘춘삼 형님’의 거친 손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1967년의 대마리는 인간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이 24번이나 바뀌며 하루에만 5만 발의 포탄이 쏟아졌다던 백마고지 아래는, 붉은 황토와 썩은 철모, 그리고 보이지 않는 ‘침묵의 살인자’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정부에서 그러더군. 가기만 하면 농사지을 땅을 주겠다고. 내 고향 이북 땅이 훤히 보이는 곳이라기에 괭이 한 자루 들고 무작정 들어왔지.” 춘삼형님의 목소리는 갈라진 논바닥 같았습니다. 가마니로 겨우 비바람만 가린 움막에서 첫날밤을 보낼 때, 사방에서 울던 늑대 울음소리보다 무서운 것은 발밑의 고요함 이었습니다.
한 걸음 잘못 디디면 다리가 날아가고 목숨을 잃는 지뢰밭. 나라에서는 땅을 개간하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지뢰를 탐지할 장비는커녕 변변한 삽 한 자루도 지원해주지 않았습니다. 개척민들은 스스로 ‘인간 탐지기’가 되었습니다. 기다란 대나무 막대 끝에 송곳을 매달아 한 뼘 한 뼘 땅을 찔러가며 전진하다 ‘툭’ 하고 불길한 쇠붙이 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내 우측 다리가 왜 이 모양이냐고? 삼수 어머니 남편, 그러니까 내 고향 동생놈이 내 눈앞에서 먼저 터져 나갔어. 그 파편에 내 다리도 이리 되었지. 그날 시체를 거두는데, 피로 물든 황토가 꼭 새빨간 영산홍 같더구먼. 우리는 울 시간도 없었어. 죽은 놈 몫까지 땅을 파내야 우리가 사니까.”
지뢰를 파내면 그 자리에 돌을 골라내고,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 흙을 이겨 논을 만들었습니다. 군인들의 삼수갑산 같은 감시와 저녁마다 통제되는 붉은 선 안에서, 그들은 매일 아침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괭이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십 년, 이십 년이 흐르자 피비린내 나던 황무지는 해마다 누런 황금물결을 이루는 문전옥답으로 변해갔습니다. 대마리 오대쌀은 그렇게 주민들의 피와 살을 먹고 자란 눈물의 결정체였습니다.
하지만 잔인한 운명은 가을의 풍요 뒤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90년대가 들어서며, 전쟁 때 피난을 떠났던 원 소유주들이 문서 몇 장을 들고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목숨 바쳐 지뢰를 파낼 때는 나라에서도 버려둔 땅이었는데, 이제 와서 법이랍시고 나가라 하더군. 재판관들 앞에서 내 이 의족을 벗어 던졌어. 이 다리가, 이 땅에 묻힌 우리 동료들의 뼈가 바로 내 문서라고 울부짖었지.”
춘삼형님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마른세수를 하십니다. 수십 년의 소송 끝에 일부는 땅을 지켜냈고 일부는 다시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마리 1세대들은 여전히 그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함께 가꾼 이의 혼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버렸기 때문입니다.
남영(湳英)은 원고지 위에 글을 채워 내려갑니다. 문장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물 수(水) 자를 품은 그의 이름처럼 대마리의 아픈 역사 위로 잔잔하게 흘러내립니다. 세상은 백마고지를 승리의 역사로만 기억합니다. 철원 평야를 가득 채운 오대미의 부유함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 빛나는 승리와 풍요의 이면에는, 서슬 퍼런 분단의 칼날 위에서 오직 맨손으로 삶을 일구어낸 이름 없는 춘삼형님 같은 개척민들의 거룩한 애환이 있었습니다.
탈고를 마친 남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오늘따라 대마리 1세대 노인들이 평생토록 짊어져 온 삶의 무게처럼 묵직하고도 고요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판 것은 지뢰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들이 심은 것은 벼가 아니라 조국을 향한 묵묵한 신뢰였다.’ 남영은 마음속으로 그 비장한 노래를 받아 적으며, 대마리의 푸른 들판 위로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합니다. 6.25발발 76주년에 그들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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