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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만의 왕릉 이야기⑤ -헌릉]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

능의 왼쪽 태종, 오른쪽 원경왕후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5일
 
< 강경만/ 공인노무사 >  
1. 답사를 시작하며(답사일 : 26. 5. 30)

5월의 마지막 주를 맞이하여 늘 하던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대화, 왕릉.
작은 걸음 큰 울림, 왕릉답사를 시작하며, 오늘은 "육룡이 나르샤"의 주인공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자락에 위치한 태종 이방원의 헌릉을 답사하였습니다.

2. 이방원, 그는 누구인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그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1등공신, 왕위를 놓고 정도전, 중전 신덕왕후 등과 태조의 왕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1,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라 조선초기 사병을 혁파하고 육조직계제를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특히 외척의 발호를 사전에 제거하여 훗날 세종으로의 권력교체에 걸림돌을 순조롭게 해결하였고, 1405년 한양 재천도를 마무리 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개창한 왕입니다.

부인 원경왕후 민씨는 여흥민씨 민제의 딸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데 동생 민무구, 민무질과 함께 결정적인 도움을 줬으나 크고 작은 일로 권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자녀로는 양녕, 효령, 충녕(세종), 성녕의 4대군과 4공주가 있다.

한편, 이방원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은 너무 많은 정적 정몽주, 정도전, 남은, 심효생, 장인 심온 처남 민무구 등 살인은 물론 세자 방석 등 왕자들을 죽인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하여 긍정적인 측면은 조선초 국가체제 정비는 물론 왕권 강화로 나라기반을 튼튼히 하여 반석위에 올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는 듯 합니다.

3. 헌릉(獻陵 드릴 헌, 무덤 릉)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에 있는 조선 제3대 왕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이다. (왼쪽 태종, 오른쪽 원경왕후)

태종은 1420년(세종 2) 7월 10일 창경궁 별전에서 원경왕후가 세상을 뜨자 명을 내려 같은 해 9월 17일 대모산 기슭에 왕후의 능을 조성 하였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422년(세종4) 태종이 승하하자 1422년 9월 6일 세종이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 옆에 태종의 능을 조성하였다.

헌릉은 두 개의 능이 같은 언덕에 조성된 쌍릉으로, 조선 태조의 건원릉 형식을 모방하여 따랐다. 두 능은 12칸의 난간석을 둘러 서로 연결되어 있다. 봉분의 아랫부분은 병풍석이 감싸고, 능 앞의 석물은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 각 1쌍, 석호·석양 각4쌍, 문인석·무인석·석마 각 2쌍이 배치되었다. 이는 고려 공민왕릉(현릉)을 기본으로 삼은 배치법으로, 조선 왕릉의 위엄과 웅장함을 잘 드러낸다.

언덕 아래쪽으로는 정자각과 비각이 있으며, 비각 안에는 1424년(세종 6)과 1695년(숙종 21) 세운  도비가 있다. 조선 왕릉 중 신도비를 갖춘 곳은 건원릉(태조)·후릉(정종)·헌릉(태종)·영릉(세종) 뿐이다.

정자각 근처에 소전대(燒錢臺; 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지방을 불사르는 시설)이 있는데 이는 건원릉과 헌릉에서만 볼 수 있는 조선 초기의 석물이다. 원찰은 경기고 앞에 있는 봉은사이며, 봉은사 내에 추사 김정희가 죽기 3일전에 쓴 현판 판전이 있고, 봄날 홍매화가 그때 그 시절을 향원익청한다.

4. 헌릉 답사를 마치며

이유불문, 이방원은 위대한 혁명가였고 조선 후기 세도정치하 왕들에 비견되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조선의 왕 다운 절대군주였다. 내려 오면서 고개들어 세도정치의 희생양 순조의 인릉이 생각났으나 훗날을 위해 남겨 두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헌릉 앞에 생뚱맞게 현대식 건물로 빼꼼 서 있는 국정원 건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재적소는 아닌 듯하여 씁씁한 생각이 든다.

늘 그러하듯 왕릉을 답사하면서 깨닫는 것은, 유홍준님의 명언,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본 것은 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상상하는 만큼 느낄수 있고 대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인가 보다.

오늘도 왕릉의 정기를 일상에 지친 한분 한분께 드리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늘 행운과 행복 그리고 기적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6. 6. 15.

강경만/ (한솔노무사사무소 대표/포천신문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 헌릉(좌)태종, (우)원경왕후 >
< 봉은사 입구 >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로, 도심 속에서 고즈넉한 휴식을 제공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 >
< 헌릉 안내 설명판 >
< 헌릉(좌)태종, (우)원경왕후 >
< 헌릉 정자각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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