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11-04 오후 04:33:03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칼럼종합

[이임성의 칼럼] 저격능선과 항미원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0일
 
<이임성/포천신문 논설위원>
 
경기북도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업무차 최전선과 휴전선 접경 지역을 수시로 다니다 보니, 발길 닿는 곳마다 서려 있는 한국전쟁의 참혹한 역사에 저절로 깊은 관심이 가닿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초반,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에 군법무관으로 3년간 복무하며 수색에 위치한 육군 제30사단 검찰관으로 근무했던 인연이 있기에 최전선 전적지를 바라보는 감회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현장검증을 위해 출장을 가거나 주말을 맞아 접경지 트레킹을 할 때면, 인근에 위치한 격전지와 전적지를 빠뜨리지 않고 꼭 둘러보며 당시의 숨결을 되짚어보곤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순식간에 한반도 전체를 거대한 화염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전선은 임진강과 한강을 거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내려갔다가, 다시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선까지 치고 올라가는 등 한반도 전역을 격렬하게 요동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신속한 개입과 중국인민지원군의 대규모 참전이 이어지면서, 이 전쟁은 단순한 남북 간의 충돌을 넘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거대한 국제전의 양상으로 치달았습니다. 사실상 처음부터 세계 대전의 축소판인 국제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시 미군을 중심으로 결성된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목숨 바쳐 사수해 낸 워커 장군, 그 뒤를 이어 탁월한 반격 작전을 지휘한 리지웨이 장군, 그리고 리지웨이의 바통을 이어받아 전선을 견고하게 이끈 밴플리트 장군이 릴레이로 사령탑을 맡아 전장을 지휘했습니다. 이에 맞선 중국인민지원군은 전쟁 기간 동안 무려 250만 명에 달하는 대병력을 동원했으며, 그 정점에는 총사령관 팽덕회(펜더화이)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결국 한국전쟁의 중후반기는 밴플리트와 팽덕회라는 두 희대의 지략가가 펼치는 치열한 수싸움과 군사적 지략 대결의 장이었습니다.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양측 사이에 전격적으로 휴전협정이 개시되었고, 역설적이게도 협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전선은 거대한 교착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한 채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1953년 7월 마침내 종전(정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현재의 휴전선 지역을 중심으로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처절하고 격렬한 '고지전'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고지전은 말 그대로 양측에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상 최악의 소모전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업무와 일상으로 자주 찾는 경기북도 서부전선의 연천, 그리고 강원도의 철원과 김화를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중심지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마을 뒷동산과 나지막한 능선들이 하루아침에 피아간의 시신이 쌓이고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지옥 같은 격전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몰려오는 적들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마침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당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미군 병사들은 저마다의 고지에 독특한 별명을 붙여 불렀습니다. 주로 고향의 도시 이름이나 지형의 생김새를 본떠 명명하곤 했는데, 벙커힐 고지, 네바다 전초, 라스베가스 전초를 비롯하여 포격으로 나무가 모두 날아가 버려 대머리처럼 변한 '올드 발디(대머리) 고지', 하늘에서 본 형상이 화살표를 닮은 '애로우헤드(화살머리) 고지', 그리고 피아간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며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이 되었다는 '화이트 호스(백마) 고지'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훗날 그레고리 펙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에 알려진 연천의 '폭찹(Pork Chop) 고지'와 그 옆의 '티본(T-Bone) 고지', 그리고 철원 동송읍에 위치한 '아이스크림 고지'처럼 친근한 음식 이름에서 따온 별명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육체파 여배우나 핀업걸, 가수의 이름을 따서 붙인 베티 고지, 노리 고지, 제인 러셀 고지 등도 존재했습니다. 격렬한 포화 속에서 고향을 떠나온 청년들이 느꼈을 극심한 향수와, 죽음이 코앞에 닥친 전쟁의 공포를 조금이나마 이겨내보고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최전선 병사들의 애환과 몸부림이 투영된 이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수많은 별명 중에서도 유독 이질적이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 바로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대를 서슬 퍼렇게 내려다보고 있는 오성산의 '스나이퍼 릿지(Sniper Ridge)', 즉 '저격능선'입니다. 오성산이라는 압도적인 감제고지를 미리 선점하고 있던 중국인민지원군 저격병들에 의해, 맞은편 능선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과 국군 병사 수백 명이 제대로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쓰러져 간 참혹한 현장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고지전>에 등장하여 아군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신출귀몰한 저격병 '2초'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바로 이곳 저격능선의 실존 인물입니다. 아마도 미군 장병들은 아군들에게 '언제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니 저 능선을 극도로 경계하라'는 생존의 경고를 담아 그곳을 저격능선이라 부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반면, 중국은 이 오성산 저격능선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를 자신들의 언어로 '상감령(상간링) 전투'라고 부르며 완전히 다르게 기억합니다. 당시 중국의 총사령관 팽덕회는 밴플리트 장군이 퍼붓는 무차별적인 공중 폭격과 가공할 만한 화력을 견뎌내기 위해, 오성산 전역의 암반을 뚫고 무려 만리장성의 전체 길이에 맞먹는 총연장 3,000km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 갱도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미군이 자랑하는 압도적인 포탄 우세 속에서도 중국군이 끝내 진지를 사수하며 버텨낼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지하 요새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거대한 화력에 맞서 오성산 저격능선 고지를 끝까지 지켜내며 미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힌 것은, 당시 중국 입장에서 보면 작지만 결정적인 승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중국은 이 상감령 전투를 자신들이 주장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공동작전' 및 한국전쟁 승전의 가장 위대한 상징이자 정점으로 치켜세우며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전쟁 직후 당대 최고의 인민배우들을 총동원하여 제작한 프로파간다(선전) 영화 <상감령>은 중국 전역에서 수억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애국주의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항미원조'란 잘 아시다시피 '미국의 침략에 맞서 북조선을 돕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6·25 전쟁 당시 자신들의 불법적인 대규모 참전과 한반도 통일 저지 행위를 국제사회와 자국민 앞에서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철저한 왜곡과 선전 의도가 내포된 용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대한민국 국방부 산하의 전쟁기념사업회가 한국전쟁을 소개하면서 이 '항미원조'라는 표현을 버젓이 병행 기재하여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가 언론에 보도되는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양성을 논하는 민간 학술단체나 시민단체도 아닌, 대한민국의 호국 영령을 기리고 전쟁의 올바른 역사를 보존해야 할 국가 공공기관이 대체 왜 그런 편향된 용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했는지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한 행정적 실수나 검토 미비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유입을 통해 어느샌가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중국식 프레임인 '항미원조'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 왜곡이 날로 거세지는 지금,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항미원조'는 더 이상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달래기 위한 내부용 수식어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자칫 우리의 방관 속에서, 대한민국을 침략했던 그들의 부당한 발자취가 공식적인 동아시아 국제 역사의 정당한 한 페이지로 교묘하게 승격되어 박제되는 것은 아닐지, 깊은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 이임성 변호사 / 포천신문 논설위원, 현)법조윤리협의회 회장 , 전)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 전)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 >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0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 포천시 해룡로 130-38 (동교동)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편집인 강신옥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아50080 / 등록일 : 2009년 6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