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 수업이 잡혀있던 어느 날 유난히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큰맘 먹고 산 옷이 화근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울 속 모습은 무척 근사했지만, 막상 입고 나서부터는 고행 이었습니다. 숨을 쉴때마다 갈비뼈가 조여오고, 앉아 있을 때조차 신경이 온통 옷의 솔기에 쏠려 정작 중요한 일에는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그 옷을 벗었을 때 밀려오던 해방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수많은 ‘관계’ 또한 이 옷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나를 깎아내며 관계라는 틀에 스스로를 억지로 끼워 맞추곤 합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옷에 몸을 구겨 넣듯, 맞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동안 우리의 일상은 서서히 숨이 막혀갑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정작 내 마음에는 피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연기하며 이어가는 관계는 결국 인생 전체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옷이 몸을 조이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몸이 병들듯, 불편한 관계는 우리의 영혼을 서서히 메마르게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최면에 걸려 나를 지워가는 정성이 사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던 셈입니다.
옷장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우리가 가장 자주 손이 가는 옷은 화려한 명품이나 화려한 색상의 옷이 아니라, 결국 '편안한 옷'입니다. 내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고, 입었을 때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옷이죠.
관계의 본질도 이와 같습니다. 오래 지속되는 좋은 관계의 핵심은 첫 만남의 설렘이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편안함'에 있습니다. 나의 부족한 점을 가감 없이 보여줘도 괜찮다는 안도감, 침묵이 흘러도 어색함 대신 평온함이 고이는 자연스러움, 그리고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유로움. 이런 편안함이 전제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관계 안에서 온전히 숨을 쉬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한 용기, '관계의 가지치기'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완벽하게 합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맞지 않는 옷을 수선해서 입을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과감히 의류 수거함에 넣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배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온전히 살려내고, 상대에게도 더 이상 거짓된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나무가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해 겨울을 앞두고 가지치기를 하듯, 우리 삶에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나를 억누르는 관계들을 정리한 빈자리에는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평온'이 들어앉게 됩니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마음을 조이고 있는 무거운 관계는 없었나요? 타인의 시선이라는 두꺼운 외투를 잠시 벗어두고, 모닥불 앞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오직 나만의 온전한 편안함을 누릴 때, 우리는 비로소 내일을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관계 또한, 마음이 편해야 오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가장 공들여 가꿔야 할 관계는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나를 편안하게 대할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진심 어린 편안함을 나눠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나를 옥죄던 불편한 옷들을 시원하게 벗어 던지고,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그동안 애썼다"고 말해주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합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