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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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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신발을 신어왔습니다. 치열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버티게 했던 구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운동화, 그리고 이제는 발 모양이 완전히 배어버린 낡은 신발까지 그 신발들은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도구를 넘어, 우리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 그 자체입니다.
익숙한 신발은 참 편안합니다. 굽이 닳고 가죽이 헤어졌어도 발에 착 달라붙는 그 느낌은 세월이 준 선물 같습니다. 반면, 새로 산 신발은 우리를 긴장하게 합니다. 기분 좋게 신고 나섰다가 뒤꿈치에 잡힌 물집으로 인해 절뚝거리며 걷게 되면, “괜히 샀나” 싶은 후회와 함께 다시 옛 신발을 찾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어떤 변화든 변화는 이처럼 ‘쓴맛’을 감수하는 인내의 시간입니다. 특히 인생의 중턱을 훌쩍 넘어선 우리들에게 변화는 더욱 낯설고 두렵게 다가옵니다. 쌓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잃을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생 낡은 신발 한 켤레만 고집하며 살 순 없습니다. 낡아빠진 신발이 해지고 구멍이 나면,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발에 부담을줍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정체가 때로는 가장 위험할수도 있습니다.지난주 오래 신어 정들었던 신발을 신발장에서 꺼내 정리했습니다. 밑창은 다 닳았고 가죽은 볼품없이 구겨진 그 신발을 보며, 나도 모르게 씁쓸한 책망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이런 낡은 신발을 신고 여기까지 왔을까.’ 풍족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슬하의 삼남매 공부시키고 분가시키며 그동안은 이것이 당연한 내 삶의 모습이라 여겼지만, 문득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니 지난 세월이 어쩐지 주책스럽고 안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낡은 것은 안온했지만, 이제는 그 낡음이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지난 세월이 빚어낸 ‘내공’이 있습니다. 그동안 험한 길을 걸으며 단단해진 발바닥과 굳은살,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지혜가 우리 안에 고스란히 쌓여 있습니다. 새로운 신발을 신고 나설 때, 우리는 맨몸으로 도전하는 청춘들과는 다른, 한층 깊고 노련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발이 혹시 내 발에 맞지 않아 길들이는 과정에서 상처가 나더라도 괜찮습니다.
인생은 결국 새 신발을 길들이는 과정의 연속이니까요. 중년의 나이라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엔 조금 늦었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소화해낼 충분한 연륜이 쌓였다는 뜻이기도합니다. 두려움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 ‘변화’라는 이름의 새 신발을 신어봅시다. 낯선 길을 걷다 보면 발이 아프고 때로는 예전의 편안했던 낡은 신발이 그리워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지금 이 길들임의 시간이 지나면, 그 새 신발은 어느덧 우리 발에 딱 맞는 최고의 동반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낡은 신발을 벗어 던지는 것은 결코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동안 고생한 자신을 다독여주고, 이제는 더 가볍고 활기찬 걸음으로 내일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입니다. 굽이 높은 신발이든, 낯선 등산화든 상관없습니다. 오늘, 당신의 발 앞에는 어떤 새 신발이 놓여 있습니까? 그 신발을 신고 다시 한번 세상 밖으로 힘차게 발을 내디뎌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아직,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할 사람들이니까요.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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