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옥(포천의제21협의회 고문)
구순이 가까우신 어머님께서 오랜만에 출타하였다. 몇 년만에 처음인 것처럼 마음이 휑하니 가벼우면서도 허전하다. 평소에 말씀은 없으시지만 시선만큼은 엄하시고 차가울 때도 있었으니까 당신에게 비친 내 모습이 유발한 결과이겠지만 끼니때마다 그래도 마음에 부담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어디를 가셔도 이 삼일을 못 주무시는데 이번에는 따님에게 발목을 잡히시고 일주일이 넘게 계신다.
40년 가까이 모시고 살아온 며느리다. 당신 속으로 낳으신 딸보다 내가 어머님 마음속은 훤히 꿰뚫는다.
아마 매일처럼 집에 가신다고 하셨을게다. 어머님 속을 알면서도 편안한 휴식을 취한 것은 속보이는 며느리가 아닌가 생각하니 죄스럽다.
그래도 할 짓은 다해야 한다. 거실 마루에 커다란 화선지에 그림도 그리고 깊어진 가을밤에 가까운 친구들 불러 수다떨고 박장대소하고 어머님 계시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내색하고 못마땅해 하시는 분은 절대 아니다.
표정 없이 침묵하시니 더 어렵다. 고부간의 사이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다.
어느덧 나도 며느리가 둘! 지난 내 삶을 돌아보며 현명한 시어머니가 되리라 마음은 한결이다. 그러나 순간포착의 오차에서 생기는 빛의 전광만큼이나 빠른 스파크! 서로의 양보밖에 없다. 흐르는 물처럼 우리 사는 모습에 자연의 순리를 닮아야 함을 알면서도 구순 가까우신 연세에 자리에 눕지 않으시고 아파트 경로당 회장까지 맡으셔서 젊은 사람 제치고 식사 준비등 회원관리를 잘도 하시는 우리어머님의 대단함에 가끔은 숨이 차다.
나는 과연 어머님처럼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하는 염려 때문에.... 하기야 어머님과 나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서로의 도리를 다해 상처 드리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주 각인시킨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가는 법! 따님 댁에서 지루하게 계신 어머님 생각해서 돌아오시는 날 기쁘게 맞이 해드릴 준비나 해야겠다. 워낙이 소식하시는 분이라 어머님 마음만 편안히 맞아드리면 더 무엇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집에 들어오실 어머님 생각하니 그 뒤의 그림자 같은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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