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비정신 33] 청렴결백한 맹사성(孟思誠)

맹사성은 세종때 좌의정을 지냈다.

평생 재산을 모으지 않았고,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맹사성이 평상복 차림으로 남쪽을 여행하다가 길에서 소나기를 만나 잠시 누각에 올라가 비를 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비 황의헌이 먼저 누각에 올라 두 손을 뒷짐지고 바야흐로 현판에 써있는 시를 보며 얼마간 읊조렸다.

그런 다음 오만한 태도로 맹사성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영감은 방금 내가 읽은 시의 흥취를 알겠소?"

구석에 앉아 있던 맹사성이 일어나 대답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늙으 시골뜨기가 어찌 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황의헌은 더욱 오만한 자세로 대답했다.

"이것은 바로 선현들이 눈으로 보고 흥에 겨워 우리 강산의 뛰어난 경치를 묘사한 것으로 아마도 문자 가운제 살아있는 그림이 아닌가 하오"

"그렇군요. 참 좋습니다. 하지만 선생 같은 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시에 대해 물어 볼 수 있겠습니까?"

조금 지나자 뒤쳐진 채 따라오던 맹 정승의 하인들이 많은 짐을 짊어지고 누각에 도착하였다.

황의헌이 그제야 이상하게 여기고 하인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 영감이 누구요?"

하인이 눈을 휘둥그래 뜨고 대답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바로 맹사성 대감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의헌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그 자리에 엎드려 사죄하였다.

그러자 맹사성은 껄걸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그 뜻이 중요한 것이오.

그대한테는 사람을 오만하게 대하는 마음이 있었소.

조금 전에는 그렇게 도도하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는 왜 이리 비굴하단 말이오?"

맹사성은 부모님을 뵈러 온양을 자주 오갔다.

그가 온양에 갈 때는 각 고을에 알리지 않고 관가에도 들르지 않았으며, 간혹 간소한 차림으로 소를 타고 움직였다.

그런데 어느 날은 양성(陽城)과 진위(振威) 두 고을의 수령이 맹대감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장호원에서 기다렸다.

수령들이 음식상을 차려놓고 기다린지 한참이 지나서야 소를 탄 늙은이 하나가 두 수령 앞을 지나갔다. 두 수령은 아전을 시켜 그를 꾸짖게 하였다.

"장차 정승의 행차가 당도할 터인데 웬 시골 늙은이가 얼쩡거리는가?"

아전이 꾸짖자 맹사성은 가만히 어깨를 추스르며 대답했다.

"너의 주인에게 가서 내가 온양에 사는 맹고불(孟古佛)이라고 말씀 올리거라."

고불은 곧 맹사성의 호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전은 곧 수령 앞으로 달려와 보고했다.

"저 노인네가 하는 말이 자기가 맹고불이라고 마씀드리랍니다."

그 말을 들은 두 수령은 화들짝 놀라 달아나다가 깊은 연못에 관인(官印)을 빠뜨렸다고 한다.

맹사성이 온양에서 다시 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 용인의 객사(客舍)에 들렀다.

그런데 화려하게 차려입은 선비 하나가 먼저 누각에 앉아 있었으므로 맹사성은 차마 누각에 오르지 못하고 그 아래에 앉았다.

먼저 도착한 선비는 영남에 사는 사람으로, 의정부 녹사(녹사)에 응시하기 위해 도성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선비는 아래층에 앉은 늙은이를 보고는 누각 위로 올라오게 하였다. 그러고는 한창 장기를 두며 대화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비가 내렸으므로 두 사람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대화를 나누면서 심심풀이로 말끝에 반드시 "공"이나 "당"을 넣어 문답하기로 하였다.

먼저 맹사성이 물었다.

"무엇하러 도성에 올라가는공?"

"녹사에 응시하러 간당."

"내가 시켜줄공?"

"웃기는 소리당."

훗날 맹사성이 의정부에 앉아 있는데 그 선비가 들어와 인사를 올렸다. 맹사성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잘 지냈는공?"

선비가 깜짝 놀라 바라보니 바로 도성으로 올라올 때 객사에서 만난 노인이었다.

그가 비로소 맹사성인 줄 안 선비는 땅에 엎드리며 소리쳤다.

"죽겨지이당!"

결국 그는 녹사에 뽑혔다. 후인들은 이를 일러 "공당문답"이라 하였다.

맹사성은 성품이 청결하여 항상 나라에서 주는 녹미(綠米)만 먹고 살았다.

하루는 부인이 밥상을 차려왔는데 햅쌀밥이었다.

오랜만에 햅쌀을 접한 맹사성이 부인에게 물었다.

"햅쌀은 어디서 가져온 것이오?"

"집안에 있는 쌀이 하도 오래 묵어서 먹지 못하게 되었기에 이웃집에서 조금 빌어왔습니다."

그러자 맹사성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나라에서 녹을 받는 사람은 마땅히 그 녹을 먹어야 하는데 어찌 남에게 빌어온단 말이오?"

정승이 된 뒤로 그는 항상 문을 닫아걸고 손님을 만나지 않았으니 이는 청탁을 거절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번은 병조판서가 상의할 일이 있어 맹사성의 집을 찾았는데 집이 무척 비좁았다.

마침 소나기가 내리자 뚫어진 지붕 곳곳으로 빗물이 새는 바람에 옷이 다 젖고 말았다.

병조판서가 맹사성의 집을 나서며 탄식하였다.

"정승의 집이 이러한데 내 어찌 바깥 행랑채가 필요하리요."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행랑채를 허물어 버렸다.

행사성이 우의정으로 있을 때였다.

그때 사관들이 "태종실록(太宗實錄)"을 기록하였는데 맹사성은 감관사(監館事)로 그 내용을 감수하였다.

"태종실록"의 편찬이 끝나자 세종이 맹사성을 불러 말했다.

"아버님의 실록이 완성되었다는데, 과인이 한번 봤으면 좋겠소."

그러자 맹사성이 세종의 요구를 거절하며 말했다.

"사서(史書)란 옛 임금의 행적과 치적을 가감(加減)없이 기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에는 임금의 과오가 없을 수 없습니다.

만일 임금께서 그 과오를 보게 되면 반드시 억울한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임금이 사관들이 기록한 실록을 보고, 이에 만족하지 못하여 기록을 고치게 되면 반드시 훗날의 임금께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임금이 실록을 보고 기록을 보고 고치게 된다면 사관들이 두려워서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실록을 보실 수 없습니다."

맹사성의 말을 듣고 난 세종은 말없이 수승 하였다.

맹사성(孟思誠)

1360년(공민왕9) ~ 1438년(세종20)

본관은 신창(新昌)이며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이다. 1386년(우왕12)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春秋館檢閱). 우헌납(右獻納). 수원판관. 내사사인(內史舍人) 등을 지냈다.

조선이 건국되어 예조의랑(禮曹議朗)이 된 이래 정종과 태종때에 요직을 두루 거쳤다.

1408년 대사헌이 되었을 때 지평(持平) 박안신(朴安信)과 함께 평양군(平壤君)조대림(趙大臨: 태종의 딸 경정공주의 남편)을 왕에게 보고하지 않고 잡아다가 고문하는 바람에 태종의 노여움을 사 처형될 뻔하였으나 영의정 성석린(成石璘)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그후 예조판서, 호조판서, 공조판서를 거쳐 1419년(세종1) 이조판서가 되었다. 1432년 좌의정에 올랐으나 1435년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혔으며 돌아갈 때도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샤 들어왔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하여 출입할 때는 소타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하였다.

영의정 성석린은 그의 집 가까이 살았는데, 자신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 앞을 지날 때면 항상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