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선단동 설운2통은 2천여년 전 큰 홍수가 나 마을 일대가 바다처럼 물이 가득 찼었다. 이때 마을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하여 지금까지 ‘해룡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포천현아(抱川懸衙)에서 삼십리가 떨어져 있다하여 서른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 서른리로 불리다가 설운리가 됐다는 설도 있다.
이일웅 회장은 “우리 동네는 왕방산과 해룡산 정기를 받아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한 기를 타고났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농지가 많은 농경마을이었지만 최근에는 공장부지가 많이 들어서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 집은 3~4집 정도이고, 회원들 대부분은 자급자족식의 소일거리로 농사를 짓고 있다. 때문에 아침부터 오후까지 경로당에서 지내는 회원들이 많다. 직접 농사지은 감자, 시금치, 아욱 등을 반찬삼아 매일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있다.
강숙자 총무는 “점심을 먹고 운동삼아 게이트볼을 치는 것이 하루 일과인데, 요즘에는 날이 더워서 거의 경로당 안에서 쉬면서 커피마시고 옥수수 등의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고 말했다.
기자가 취재 차 방문한 날에도 강숙자 총무가 직접 수확한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함께 나눠 먹고 있었다. 한 회원은 “우리 경로당 회원들은 다들 인심이 좋아서 해룡마을 사는 한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설운2통은 몇 년전까지 마을에 역사가 오래된 큰 소나무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산제를 지내곤 했었다. 산제는 1년에 한번 있는 마을의 큰 행사로, 음식을 나눠 먹는 ‘마을 잔치’이기도 했다. 한 회원은 “어릴 때는 산제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맛있는 음식 먹는 날이라서 좋았다”며 “지금은 산제를 지내지 않는데, 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소나무는 우리 마을 주민들의 큰 자랑이다”고 말했다.
설운2통에서 나고 자라 인생의 부침을 겪으며 이제는 마을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한 경로당 회원들은 지금까지 겪은 경험과 기억을 제일 소중히 여긴다.
회원들은 “좋아하는 사람들, 재밌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소원이다”고 말했다.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설운2통 회원들에게 오늘 하루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