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관인면 삼율리는 삼국시대 초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다가, 고구려 영역이 됐고 이후 신라 진흥왕 때에 신라 영역으로 흡수되는 등 역사의 변천이 심했던 곳이다. 더욱이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관인면에 소재해 6·25전쟁 때 마을의 피해가 커 휴전 이후 복구하기까지 마을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형 특성상 평야보다 산이 많아 논농사보다 보리를 많이 심어 ‘보릿골’ 혹은 ‘맥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삼율리 경로당의 박웅남 회장은 “산도 많았지만 하천에 물이 자주 말라서 물이 부족해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며 “당시에 보리와 밀을 많이 심어서 동네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국수를 많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휴전 이후 보릿고개를 힘들게 보낸 당시 삼율리 주민들은 이제 60이 훌쩍 넘어 삼율리 경로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60여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는 삼율리 경로당은 매일 20여명이 회원들이 방문해 여름의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매일 아침을 먹고 경로당에 방문한다는 한 회원은 “여기는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아서 경로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의 일과”라며 “여름엔 집이 더워서 경로당에 오고, 겨울엔 혼자 있으면 추워서 경로당에 온다”고 말했다.
삼삼오오 모여 손녀 이야기, 어렸을 적 이야기 등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포천’으로 주제가 옮겨간다. 포천지역의 현안에 대해서도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다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삼율리 회원들은 ‘포천신문’을 공지게시판에 스크랩하여 붙여놓는 등 포천지역의 뉴스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회원은 “몸이 예전만큼 건강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다니며 정보를 얻지 못하지만, 신문과 지역주민들의 정보를 통해 늘 사회에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삼율리 경로당의 가장 큰 자랑은 ‘주민화합’이라고 한다. 최태환 총무는 “우리는 경로당이 생긴 이례로 단 한 번도 회원들간에 언성이 높아진 적이 없다”며 “그 어떤 모임보다 경로당 모임이 제일 좋고 편하다”고 전했다.
삼율리 경로당은 1994년에 지은 건물의 1층을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마을회관으로 쓰이고 있다. 보통 경로당 방안에서는 할머니 회원들이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할아버지 회원들은 마당의 평상에서 시간을 보낸다. 한 회원은 “평상에 앉아있으면 바람도 불고, 매미소리도 들리고 풀냄새도 나는 등 우리 마을의 경치를 한껏 느낄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 고향 내 동네에서 좋은 사람들과 노년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