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 "내가 먼저 할 수 있었는데"

언니 오빠들의 차례가 지나고 재롱둥이 유치원 아이들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딸이 챙겨준 디지털 카메라를 작동시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어떤 할머니가 "이를 어쩌나!"하면서 안절부절하고 계셨다.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아들 차례를 기다리느라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때 내 뒤에서 어린 아기를 안고 온 젊은 애기엄마가 "할머니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하소연하듯 사정을 이야기하셨다. 며느리가 일을 나가서 대신 손자 재롱잔치에 오셨는데 사진기를 깜박 잊고 못 챙기셨단다. 재롱잔치에 사진도 한 장 못 찍어주면 며느리가 무척 속상해 할 것이라면서 걱정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 그 젊은 애기엄마는 "할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찍어서 이메일로 보내 드릴테니 손주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세요."라고 했다.

바로 옆에 앉아서 내 아들 사진 찍기만 바빴던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젊은 애기 엄마가 특별해 보였다. 그다지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젊은 엄마 얼굴에서 성모마리아의 광채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살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무관심하게 외면해버린 내 자신이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사진을 찍는 동안 할머니는 어린 아기를 안고서 마치 시집간 딸과 친정엄마처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서로를 보듬으면서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외톨이가 된 듯 혼자 앉아 있었다. "내가 먼저 그 할머니를 도와 줄 수도 있었는데..."후회스러움과 부러움이 가득 밀려왔다.

세상을 살면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손을 내밀 때  나는 그를 도와주었는가?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해 버렸던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봉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물며 내 옆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의 손조차 잡아주지 못한다면 어찌 내 자식에게"참되게 살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들의 재롱잔치에서 나는 또 한 수를 배웠다. 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오늘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