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면 고소성리에 가면 다른돌 마을이 있고 ‘다름바위’가 있으며 포천읍 어룡리 왕방산 기슭에는 ‘배걸바위’가 있다. 마을마다 마을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전설이 있어 마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필자가 6.25전 개성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개성 송악산 기슭에도 돌이름이 ‘배걸바위’란 곳이 있었던 생각이 난다. 전설에 의하면 고소성리의 고소성은 옛날 영평군 서면 지역인데 고소성은 고려때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 중 부녀자들이 동원되어 쌓은 성이라고 해 왔다. 그런데 사실은 천지개벽(지구상의 재탄생 이전의 지각 변동) 이전에 바다가 이곳 고소성 ‘다름바위’까지 수면의 높이가 높아서 다름바위에다 구멍을 뚫고 큰 동아줄로 배를 매달아 놓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항구이자 부두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후 ‘다름바위’ 구멍에는 큰 동아줄이 매어 달린 채 최근(50여년전)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왕방산의 ‘배걸바위’나 송악산의 ‘배걸바위’도 천지개벽 이전의 그 바위의 위치가 항구나 부두였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내 고향 포천 선단리나 영평천, 군내면 등지의 돌도끼, 선사 유적지(고인들) 등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는 걸 보면 역사 이전에도 현대인이 모르는 어떤 역사가 이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 재미있다. 창수면 추동리에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인문과학 중에서도 고고학이나 역사학적 연구는 인류 발전에 기초학문의 꽃이라는 점에서 내 고향 포천의 인재가 더욱 깊은 연구로 세계 인류고고학계에 공헌하는 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최근 성남지역이 경기북부 일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원시인들의 삶터였다는 연구는 ‘배걸바위’ ‘다름바위’ ‘고인돌’ 연구의 촉매제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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