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 쓰는 말 가운데 "지식" 이라는 말이 있고 "지혜" 라는 말이 있다. 지식(知識)이란 의식(意識)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식(識)이란 느낀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서 느낀다는 것이다. 무엇을 느끼는가? 뜻(意)을 느끼고 감(感)을 느끼는 것이다. 아프다. 괴롭다. 슬프다. 기쁘다. 하는 감정(感情)을 느낀다는 것이다.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하는 뜻(意)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식(認識)한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느끼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면 의식(意識)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의식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은 육감(六感)으로 느끼고 알아듣는다. 육감이란 1)눈으로 보는 시각(視覺) 2)귀로 듣는 청각(聽覺) 3)코로 냄새를 맡는 후각(嗅覺) 4)혀로 맛을 보는 미각(味覺) 5)피부로 촉감을 느끼는 촉각(觸覺) 그리고 6)뜻을 알아차리는 의식(意識)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일반 동물과 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뜻(意)으로 "지식" 을 쌓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동물도 그들 나름대로 의사소통(意思疏通)은 한다. 그러나 인간처럼 "생각" 을 하지 못하고 "지식" 을 쌓아나가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것이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뜻을 이해(理解)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살아서 "뜻"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지식"을 쌓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뜻(意)이 무엇을 말하는지 배워나가야 쌓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은 배움에서 싹 트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배우던 칠판을 통해 배우던 배워야 지식을 쌓아나갈 수 있고 그 지식을 넓혀나갈 수 있다. 이처럼 배워서 아는 것을 "지식"이라 하는 것이다. 학이지지(學而知之)라 말하는 것이다. 지식은 이처럼 "학이지지"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지식"이 배워서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깨우쳐서 아는 것이다. 책을 통해 배우던 칠판을 통해 배우던 배운다는 것은 남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남의 도움을 받아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노력(努力)해야 한다. 배우려는 의지(意志)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깨우친다는 것은 남을 통해 아는 게 아니다. 스스로 아는 것이다.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생활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다.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살아나가는 과정(過程)에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물리가 트이는 것이다. 행간(行間)의 의미를 터득하는 것이다.
절에 가면 선승(禪僧)이 있고 학승(學僧)이 있다. 선승이란 참선(參禪)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을 밟는 스님을 말하는 것이고 학승이란 경전(經典)공부를 통해 지식을 넓혀나가는 스님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선승도 중요하고 학승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승보다는 선승을 한 단계 높여보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스스로 깨우치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우치는 고행(苦行)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행을 통해 스스로 깨우쳐 얻은 지식을 각이지지(覺而知之)라 한다.
"앉아서 구만리"라는 말이 있다. 앞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理致)를 훤히 안다는 것이다. 각(覺)의 경지(境地)에 들었기 때문이다. "각의 경지"에 들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배우지 않았어도 지혜롭게 행동하고 지혜롭게 살아오셨다. 무엇이 그들을 그처럼 지혜롭게 만들었는가? 마음이다. 맑고 밝은 마음이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명경지수에 비친 대로 말하고 명경지수에 비친 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명경지수의 경지"에 한 번 가보라. 그리하면 누구나 각(覺)이 열릴 것이다. 깨우침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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