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30일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 산 34번지에서 1979년 9월 3일에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정발장군의 묘소에서 추모제를 봉행했다.
정발(鄭撥,1553(명종8)˜1592(선조2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고(子固), 호는 백운(白雲), 본관은 경주이며, 군수 명선(明善)의 아들이다.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해남현감 거재현령 위원군수 훈련원 부정을 차례로 역임하고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부산진첨절제사로 부임하였다. 1592년 4월13일 왜장 고늬시(小西行長)가 이끄는 18,000명의 왜적 1진은 경상도 제1의 해상관문인 부산진으로 쳐들어 왔다.
이 부산진 전투는 임진왜란때 조선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로 정발의 지휘하에 실제 병력 1,000명 규모의 민관군이 일심으로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다음날 성이 무너지고 정발장군도 순절했다.
부산진 전투가 끝나고 장군의 시신을 찾지 못하여 유품(옷과 갓)만 수습하여 의관장을 치루었으며 후에 무공이 알려져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으로 부산의 충열사(낙안서원)에 제향 되고 있다. 묘는 부인 청풍 임씨와 합장하였으며, 상석과 향로석 무인석 망주석이 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지었으나 소실되었고, 1982년 다시 비를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