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행복을 느끼려면 이발을 하고 사흘의 행복을 느끼려면 승마를 하고 일주일의 행복을 느끼려면 여행을 하고 40년의 행복을 느끼려면 농사를 짓고 1시간의 행복을 느끼려면 꿈을 꾸고 3년의 행복을 느끼려면 결혼을 하고 평생의 행복을 느끼려면 참된 벗을 사귀고 영원한 행복을 물려주려거든 예술품을 남기고 그 곁에 나무를 심어라."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나는 이 속담이 꼭 교훈을 주는 격조 높은 격언이라고 믿기에는 좀 난해한 부분이 있으나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데가 있다는 생각이다.
다름이 아닌 맨 끝 영원한 행복을 물려주려면 예술품을 남기고 그 곁에 나무를 심으라는 대목이다.
마전3리에 가면 조선조 유순 정승의 기념식수가 있다. 유순(柳洵, 1441~1517)은 조선 연산군조 때 상신(相臣)으로 자는 희명(希明)이며 호는 노도(老圖) 당문화유씨로 세조8년 등과 연산조때 영의정, 중종반정 시 정국공신, 문성부원군(文成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만년에는 시부로써 예술적 여생을 마쳤는데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포천 자작동에서 살았으며 자작리에서 태어났는데 만년에는 수원산 아래 청량포(淸凉浦)마전동에 살았으며 연못을 파고 세 그루의 괴목을 기념식수를 했다.
(묘:양주 무둔산 팔야미) 이밖에는 금현리의 330년된 향나무는 조선인조조 이기남 선비의 생거(生居)기념식수이고 마산리의 330년 수령의 돌배나무는 회양부사를 지낸 이시성 선비의 생거(生居)기념식수이며 어룡리 상륜댁 마당의 50년된 은행나무는 의정부시장을 지낸 오건식옹의 행정고시 합격 후, 안성군수로 부임할 때 고향을 떠나며 안성산(安城産)은행나무 묘목을 심어 지금도 은행이 많이 열려 당시를 회상케 한다.
가채리에는 독립운동가 최면식 지사가 함경도에서 독립운동 당시 주머니에 넣고 온「함종율(咸種栗)」밤나무가 심어져 있어 60년 전 독립지사의 얼을 되새기게 한다. 독립기념관에 가면 포천 가채리 면암 최익현선생 생가터에서 캐어다 이식(移植)한 잣나무가 자라고 있어 독립지사의 우국충정을 회상케 한다. 각 기관장들의 기념 식수는 많다. 그런데 그 기념 식수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잘 자라고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
요즈음 수목장(樹木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수목장을 한다고 잘 자라고 있는 나무 밑에다 돌로 표석을 세우는가 하면 온 통 산을 묘지화 하여 공동묘지를 만드는 일은 삼갈일이 아닐 수 없다. 산에다 기념식수를 하고 회장한 유골을 잘 썩는 나무상자에 담아 기념 식수 곁에 묻으면 수목장은 끝나는 게 아니던가? 잊을까 걱정이 되면 나무 팻말 하나 꽂으시면 될 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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