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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만의 왕릉 이야기 ⑭ - 녕릉왕릉 ] 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11월 03일
 
< 강경만/ 공인노무사 >
 
1. 여주 녕릉 답사를 나서며 (답사일 : 26. 5. 15)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말하지 않는 것들과의 대화, 추체험적 왕릉답사, 작은 걸음 큰 울림! 이번 왕릉답사는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훗날 효종)에 관한 여주 녕릉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세종대왕의 영릉과 구분을 위하여 효종의 녕릉으로 표기합니다.

2. 녕릉의 안내표지판
녕릉은 조선 17대 왕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동원상하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곡장이 둘러쌓인 위의 능침이 효종 왕릉, 아래의 능침이 인선왕후 장씨의 릉이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아들로 1649년에 왕위에 올랐다. 10년간 재위 하면서 대동법을 실시하고, 군제를 개편하여 군사훈련 강화에 힘썼으며 청나라에 맞서는 북벌계획을 세웠다. 녕릉의 금천교는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홍살문 안쪽으로 배치되어 있어 특이하다. 녕릉의 원찰은 세종의 영릉과 같이 남한강 따라 위치한 유서깊은 봉미산 신륵사이다.

3. 효종 즉위 전 정치상황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궁중에서 '저주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인조는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의 궁녀들 몇명을 지목하여 죽였고, 강빈의 오라비들을 유배 보냈다가 불러 곤장을 쳐 죽였으며, 급기야 강빈을 폐서인하여 사사시켰다. 그로부터 1년 남짓 후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고, 그곳에서 장남과 차남이 죽었다.

궁중에서 발생한 저주사건은 소현세자빈 강씨가 봉림대군 효종과 인선왕후의 네째 딸 숙휘공주를 저주했다고 후궁 조숙의가 인조에게 고변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소현세자의 처자식들은 멸문지화를 당한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당시 소현세자가 왕이 되어 서양의 과학 문물을 수용하고 장려하여 조선을 천지개벽할 정도로 개혁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일본 보다 200년 앞서 개화하고 혁신하여 아시아 최강 나라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사견이지만,

4. 효종은 누구인가?
1649년 인조가 죽고 봉림대군이 3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니, 조선 제17대 왕 효종이다. 효종은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생 인평대군과 함께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가 강화도 함락으로 청의 포로가 되고, 인조가 송파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의 항복의식을 행하는 치욕을 두눈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는 곧 형 소현세자, 세자빈 강씨, 척화파 등과 함께 볼모가 되어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갔으며, 가는 도중에 등에 업혀가던 세살베기 딸이 병사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형 소현세자의 사후 세자 자리에 오른 봉림대군은 청나라에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 하였고, 이에 따라 효종을 설명하는 국정키워드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북벌과 스승 우암 송시열 그리고 사대부의 신념인 존대주의 사상이다.

5. 효종과 스승 송시열
당시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 집권세력은 국정 키워드가 북벌로, 북벌하면 효종과 우암 송시열이고, 효종과 송시열 하면 북벌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였다. 그러나 효종 북벌론의 실체는 먼저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라는 것과 효종이 가졌던 정통성에 관한 콤플렉스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기에 효종이 사대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주자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멀리하는 것, 즉 북벌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벌은 효종이 현실적으로 달성하고자 한 목표라기보다는, 북벌을 강조함으로써 산림과 사림의 지지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과 더불어, 문약에 빠지지 않은 튼튼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합쳐진 다목적용 국정 슬로건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6. 녕릉 답사를 마치며
여주 세종대왕의 영릉 옆에 조성된 효종의 '녕릉' 또한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길지이다. 녕릉 답사시 제일 좋은 점은 능에 이름표가 있어 구분하기 좋았다는 점이다. 답사온 학생들은 말합니다. 왜 왕릉은 이릉 저릉 똑같냐고? 그래서 국가유산청에 고합니다. 왕릉마다 명찰을 붙여 주세요!

녕릉의 원찰은 영릉과 같이 남한강 따라 위치한 유서깊은 봉미산 신륵사 입니다. 오늘도 조선 왕릉 중 풍수좋은 곳에 위치한 녕릉의 정기를 듬뿍담아 존경하는 여러분께 정성스럽게 선물합니다 . 감사합니다.
 
*답사일 : 2026. 5. 15.
 
< 강경만 / 한솔노무사사무소 대표, 포천신문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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