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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이만구] 전 포천문화원장 이만구 “시민과 호흡하는 포천 문화, 끊임없는 소통과 혁신으로 도약할 터”

-전통과 현대 아우르는 포천 문화 가치 창달… 소통·혁신으로 지역사회 든든한 버팀목 될 것
김현영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11월 03일
< 이만구 / 전 포천문화원장 >
 
본지는 이만구 전 포천문화원장을 만나 향후 포천시 문화·예술 사업의 운영 방향과 지역사회와의 상생 발전을 위한 미래 비전을 심도 있게 짚어보았다. 이만구 전 원장은 이번 특별 인터뷰를 통해 포천 문화 발전의 시급한 당면 과제와 추진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는 한편, 지역 문화인 간 화합 도모와 소통·혁신·협력의 기본 이념 확산, 지역 맞춤형 문화 서비스 및 전통·현대 문화 기반 시설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구체적인 운영 구상을 밝혔다. 아울러 향후 포천문화원이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시민과 지역주민에게 신뢰받는 문화·예술 전문 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천 과제에 대해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김현영 기자 인터뷰〉

1. [작품집 출간 계기]
최근 미수(米壽, 88세)의 나이에 그동안 여행지에서 담아온 스냅 사진과 필름들을 모아 <사진으로 보는 이만구의 추억여행>이라는 사진집을 펴내셨습니다. 이번 작품집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신 소회와 출간 계기가 궁금합니다.

귀한 시간을 할애하시고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금부터 50년 전, 포천군청 문화공보실에서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던 1976년입니다. 그해 10월 문화의 날을 맞아 기념행사 프로그램에 관내에 소재한 향토 문화재를 PPT로 보여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슬라이드 필름이 귀할 때라 서울에 가서 어렵게 필름을 구해서 관내의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정성껏 촬영하고, 또한 시나리오는 방송국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빌려서, 당시 포천 시내의 경향극장에서 문화계 인사, 이장, 새마을지도자 등 4백여 명을 모시고 기념식과 더불어 향토문화재 PPT 상영을 했는데 참석자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우리 관내에 그런 문화유산이 있다는 사실에 감명 깊었다는 평이었으며, 특히 이를 계기로 향토 문화재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한층 제고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하셨던 도청의 문화재과장님이 극찬하시면서 도청에서도 못하는 일을 포천군이 해냈다고 그해 연말에 저에게 문화공보부 장관 표창과 부상으로 다보탑 모습의 트로피를 받도록 주선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한번은 1981년 제가 포천군청 새마을계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새마을 사업 추진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 성과도 사진으로 증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각 시군의 새마을 사업 성과를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해서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PPT로 보고하게 되었는데, 31개 시군의 보고를 끝까지 시청하신 당시 이재창 경기도 부지사께 서 최종 강평을 하시면서 “모두 들 수고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도 포천군이 새마을 사업을 제일 잘 추진 한 것 같다”라고 꼭 집어서 포천군을 칭찬하시고, 그해 새마을 사업 종합 평가에서 포천군이 경기도 31개 시군 중 최우수 군으로 선정되어 “녹색봉황기”를 수여 받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조그만 사연들이 저에게 문화재, 그리고 사진과 인연을 맺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1998년 포천군청에서 퇴직한 다음 해에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사진예술과에 등록하고 4년 동안 다니면서, 사진예술과의 총학생회 회장을 맡아서 전시회도 주관하고, 포천 사진 동우회의 회장도 맡아서 사우들과 출사도 재미있게 다녔습니다. 사진에 심취해서 참으로 행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창 사진에 재미가 붙을 때인 2004년 주위 선배님들의 권유로 포천문화원 원장직을 맡은 후 그 일에 전념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진 작업은 전처럼 활발하게 하기에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천문화원장 10년 봉직을 마치고 다시 사진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틈틈이 모아온 사진들을 정리하여 이번에 소박한 여헹 사진집을 펴 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진집을 보시면서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은 아름다운 옛 추억을 회상하시는 계기가 되시고, 또 앞으로 여행을 가실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됐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선현들이 물려주신 문화유산의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아울러 각별한 관심을 가지시는 좋은 계기가 되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번 사진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설명문을 핵심만 추려서 요약 정리하는 과정에서 혹시 오류가 없었는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혹 잘못된 점이 있다면 독자 여러분께서 잘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포천문화관광재단에서 책자 발간 경비를 지원해 주셔서 큰 부담 없이 펴낼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과분하신 격려와 축하의 뜻을 보내주신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 [작품집 및 사진 철학]
2000년대 초반부터 슬라이드 필름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에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 문화유산과 역사적 가치를 담아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원장님께서 사진을 찍으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나 철학은 무엇인가요?

한 장의 사진이 갖는 의미와 미치는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AP통신사의 애덤스 기자가 촬영해서 보도한 “사이공식 처형”이란 사진 한 장이 그때까지 월남전을 성전(聖戰)으로만 알고 있던 미국 국민에게 큰 충격과 더불어 반전(反戰) 여론이 크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1993년, 데일리메일지의 캐빈카터 기자가 촬영한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은 기아와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남수단의 처참한 실상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위의 두 사진은 모두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기의 명작들입니다.

이처럼 한 장의 사진에는 한 시대의 영욕과 삶의 흔적,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희로애락이 응축되어 녹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진은 한순간 한순간을 포착하지만, 그 한순간에 담긴 이야기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을 주고 있기에 사진 한장 한장이 모두 소중하고 값진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저도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겸손한 마음과 사실을 정확히 기록한다는 엄숙한 자세로 셔터를 누릅니다. 한 장의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는 것이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의 기록이 되고, 또한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화재 사진을 촬영할 때는 벅찬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주 “첨성대”의 유려한 곡선미, 부여 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의 섬세한 세공 기술과 그 속에 담겨있는 백제인들의 이상세계(理想世界)를 더듬어 볼 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문화를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극찬을 했는데 사진으로 그 아름다움과 숭고한 뜻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3. [공직 생활과 청렴]
과거 포천군청에서 지방부이사관으로 명예퇴임하실 때까지 평생을 공직자로 청렴하게 봉사해 오셨습니다. 오랜 공직 생활 동안 지켜오신 행정 철학과 후배 공무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무릇 공직자가 청렴결백하고 맡은 바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책무입니다. 또한 이는 공직자가 항상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할 귀중한 덕목이기에 이를 지켰다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며, 따라서 이는 공직자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숙하고도 절대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저도 34년간 지방행정에 몸담아 오면서 이 덕목에 충실하고자 노력은 했습니다만 지나고 나니 좀 더 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옛 고사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조선조 명종 때에 제주 목사 이영(李榮)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관물(官物)은 다 두고 왔는데 무심코 손에 든 말 채찍이 관물이였음을 뉘우치며, 오던 길을 되돌려서 제주목의 관아에 그 말 채찍을 걸어 놓고 귀향했다는 얘기입니다. 자그마한 말 채찍 하나라도 공과 사를 분명히 했던 이 이야기는 우리 공직자가 모범으로 삼고 본받아야 할 청렴결백의 표상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우리가 늘 교훈으로 삼는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주중불어 진군자 재상분명 대장부(酒中不語 眞君子, 財上分明 大丈夫)“ 즉 “술자리에서 실언하지 않음은 군자의 덕목이요, 재물에 관하여 분명하고 떳떳함은 대장부의 도리”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는 비록 술자리뿐이 아닌 모든 언행에 있어서 신중해야 하며, 재물에 관하여도 욕심을 내거나 사익(私益)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교훈이기에 마땅히 우리 공직자들이 항상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겨야 할 소중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직자는 무한 봉사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한창 일하던 70~80년대에는 일요일, 공휴일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은 있되 저녁에 퇴근은 없는 그런 분위기에서 오직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낮에는 새마을 사업, 영농 지도 등 현지 출장 업무에 열중하고, 서류 정리 등은 주로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밤새는 줄 모르고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그런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제가 맡은 업무 외에도 다른 부서의 행사 계획 등을 검토해 주는 한편 군수님 연설문을 10년 넘게 써오는 과정에서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일 하면 서도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특근 수당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으며,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열심히 일하던 그때가 그래도 가장 보람 있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것이 요즈음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4. [포천문화원장 및 지역 문화 발전] 퇴임 후 포천문화원장(10년 봉직)과 경기도 문화원 연합회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하시며 포천의 문화·예술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하셨습니다. 원장님께서 바라보시는 포천시 문화·예술의 가장 큰 자산과 보람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포천은 산자수명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곳곳에 옛 선현들의 올곧은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는 자랑스러운 고장입니다. “생거포천(生居抱川)” 즉 “살아서는 포천에 가서 살아야 양반이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곳곳에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는 고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비정신이란 단순히 지식이 많다거나 높은 벼슬을 해야 한다는 뜻은 결단코 아닙니다. 참된 선비정신이란 학문과 인격을 열심히 닦고, 지식인 다운 올바른 도리를 실천에 옮기며,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정신이 바로 선비정신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첫째 수기(修己), 둘째 의리(義理), 셋째 청렴(淸廉), 넷째 실천(實踐), 다섯째 절의(節義) 등 다섯 가지가 선비정신의 핵심이라 하겠으며, 조선왕조 5백 년을 이끌어 온 기본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선비정신이야말로 지나간 옛날의 담론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도 꼭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소중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포천시에서 “격조 높은 인문 도시”를 지향하는 목표도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며, 잘 추진해서 좋은 결실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포천문화원장으로 재임할 때 전문 사학자에게 의뢰하여 “포천을 빛낸 인물연구 발표회”를 매년 개최하고, 포천의 선현들이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신 모습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 발췌하여 매년 “향토사료총람”을 발간하는데 진력했던 것 또한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또한 삭막해져만 가는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키고자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 쓰기 공모전”을 비롯하여, “가족 시 낭송대회”에 심혈을 경주했던 것도 모두 그러한 기풍을 진작시키고자 해서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향토사 바르게알기 경시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좋은 책 읽기 운동”을 활발하게 추진한 것도 청소년들에게 애향심과 투철한 국가관을 심어 주고자 해서였습니다. 바라건대 선현들의 올곧은 기개와 우국충절의 숭고한 뜻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또한 실천 철학이 된다면 우리 포천이 조금 더 품격 있고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고장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5. [수훈 및 공로] 근정포장(지방행정발전 유공)과 옥관문화훈장(지역문화발전 유공) 등 국가적으로도 큰 공로를 인정받으셨습니다. 지역사회 발전과 문화 진흥에 끊임없이 힘써오신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받은 “근정포장”이나 “옥관문화훈장”은 제가 혼자 받은 것이 아니라 포천군청에서 그 어려웠던 시절에 동고동락하며 함께했던 선후배 동료 여러분들. 그리고 포천문화원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뜻을 모으고 수고를 해주신 여러분들과 함께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같이 제가 공직에 있을 때나 문화원 일을 하면서, 그래도 대과 없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성원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건대 저는 포천문화원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포천군청에서 근무하는 기간 중 문화공보실에서 문화진흥 업무만 10여 년을 담당했었습니다.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늘 아쉽게 생각했던 점은 그때까지도 우리 지역에는 문화원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당시 지역의 뜻 있는 문화계 인사들과 협의하여 문화원을 창설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당시 실무과장이었던 제가 문화체육부, 한국문화원 연합회 등 유관기관을 수차례 방문하여. 문화원 창설에 따른 준비에 전심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드디어 1986년 8월 16일 자로 문화체육부 장관으로부터 “지방문화원 설립 인가증”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의 감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덕망이 높으신 지역의 유지인사 여러분을 회원으로 영입하여 포천문화원이 역사적인 새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창립회원으로 문화원 회원이 돼서 근 40여 년을 포천문화원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는 이사로. 2002년부터는 부원장으로 일하던 중 당시 원장으로 수고하시던 이승우 원장님께서 사퇴하시게 되자 주변 선배님들의 권고와 회원 여러분의 여망에 따라 부덕한 제가 2004년 4월 6일 자로 포천문화원 원장의 중책을 맡아서 10년 동안 무보수 명예직으로 지역문화 사업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막상 문화원장을 맡고 보니 재정 형편이 열악하여 소신껏 문화사업을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이에 제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역의 유지인사 20여 명을 자문위원으로 추대하여 재정적인 협조를 받는 한편 포천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서 제일 먼저 추진한 사업이 “문화학교”의 개설이었습니다. 이는 지역문화의 저변확대라는 측면에서 가장 절실하고 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처음 5개 과목으로 시작한 문화학교가 차츰 과목이 늘어나서 얼마 후에는 23개 과목으로 늘어났으며. 연간 1천2백여 명을 배출하는 지역문화의 요람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매년 12월에는 “문화인의 밤” 행사를 열어서 문화학교 수료생들의 무대 공연 발표와 더불어 그림, 서예 등의 전시회를 함께 열어서 그날은 명실공히 포천문화원의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 지역에는 반월아트홀이 있어서 소극장에서는 개회식과 공연 발표. 전시장 1, 2층에 서는 작품 전시.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여성회관 3층 홀에서 다 같이 만찬을 즐기는 등 문화원 전 회원들이 함께 뜻깊고 보람된 하루를 즐기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그런 날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정신의학계의 거목이신 이시형 박사. 또 “조선왕조 500년”의 작가 신봉승 씨 등 유명 인사 초청 강연회를 비롯하여, 연 1회씩 매년 반월문화제, 전국한시백일장, 전국휘호대회. 포천역사탐방씨티투어 등 참으로 많은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2009년 창단한 “포천문화원 실버 하모니카악단”은 “전국 효 실버하모니카대회” “금상,” 2012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하모니카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실버악단으로 성장 하였습니다.

이렇듯 전 회원들이 합심 노력한 결과 2009년에는 포천문화원이 “대한민국 문화원 상”을, 2012년에는 경기도 문화원연합회의 “어워드 대상”, 그리고 2013년에는 제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유관기관의 각별한 지원과 우리 문화원 회원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주신 소중한 결정이기에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저의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6. [향후 계획 및 메시지] 사진작가로서, 그리고 포천의 대선배로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포천시민 및 포천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따뜻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님께서 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셨습니다만 제가 이 나이에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겠습니까 ? 다만 저는 우리나라가 매우 어렵던 후진국에서 태어났음에도 운이 좋아서 선진국까지 살고 있는 어찌 보면 매우 행복한 세대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저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어렵고 가난했던 그 시절의 생활상과 개발도상국에서의 공직 생활의 이야기들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동안 제가 받아온 지역사회의 보살핌에 대한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책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90평생을 살아온 과정과 어려웠던 시대 배경 등 제가 걸어온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겨서 저의 자녀들에게만이라도 전해 주고 싶어서 정리 중에 있습니다. 아마 내년쯤에는 조그만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 봅니다. 포천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따뜻한 말씀을 주문하셨기에 외람되지만, 부탁의 말씀 한 말씀만 드리고자 합니다.

옛 성현의 말씀에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즉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설명을 드리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지혜와 성심을 다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그 이후의 결과는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기다리고 이에 순응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마음에 새겨야 할 인생의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

“항상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생 최대의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분야에 종사 하시던 열심히 노력하시고 순리를 따라 정직하게 사시는 분들에게는 반드시 하느님의 가호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여러분 자신의 성공은 물론 지역사회와 나라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고 모든 일에 열심히 노력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을 올립니다.

그리고 꼭 한 말씀 더 드린다면 우리는 이제 세계인이 모두 부러워하는 선진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진국 국격(國格)에 걸맞는 그런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공중도덕과 법질서를 잘 지키고 어려운 이웃을 긍휼히 여기며, 자신의 안위에 앞서서 공동체와 나라의 앞날을 함께 염려하고 힘을 모으는 그런 지혜와 자세가 꼭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일들이 우리의 국격을 한 단계 더욱 높이고, 따라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문화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지름길임을 꼭 기억하시고 부디 실천에 옮겨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포천신문 독자 여러분의 가정마다 늘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충심으로 기원드립니다.끝으로 인터뷰 기회를 주신 최호열 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역사와 전통에 빛 나는 포천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현영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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