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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성의 칼럼] 사선을 넘은 연대장들

"북한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러면 그런 미군은 믿을 수 있냐."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11월 03일
 
< 이임성 / 포천신문 논설위원 >
 
지난 달 26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한 말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놓고 논쟁하던 중 나왔다. 국방장관은 곧이어 한미 간 신뢰를 전제로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지휘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국방부도 장관의 발언이 미군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발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 국방장관의 입에서 미군을 믿을 수 있느냐는 말이 나온 것은 가볍지 않다.

한국전쟁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전선을 지킨 미군 연대장 두 사람이 있었다. 미 제25사단 제27연대장 존 마이켈리스 대령과 제2사단 제23연대장 폴 프리먼 대령이다. 마이켈리스는 북한군에 무너지는 전선을 찾아다녔고, 프리먼은 중국지원군에 포위된 전선을 끝까지 지켰다. 두 사람은 훗날 모두 미 육군 대장에 올랐다.

마이켈리스는 유럽 전선의 공수부대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제101공수사단 소속 부연대장으로 노르망디에 강하했다. 연대장이 강하 중 다치자 지휘권을 이어받았고, 이후 네덜란드 마켓가든 공수작전에서는 중상을 입었다. 공수부대에서 익힌 기동력과 결단력은 한국전쟁때 낙동강 전선에서 다시 빛을 발했다.

그가 맞선 북한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마산 방면 북한군 제6사단장 방호산은 중국 팔로군 출신이었다. 제6사단은 중국 인민해방군 제166사단 조선족 부대를 모체로 편성된 부대였다. 한국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국공내전에서 전쟁을 치른 백전노장 병사들이었다.

1950년 8월 마이켈리스의 제27연대는 마산 진동리 전선에 투입됐다가 다시 북쪽 다부동으로 이동했다. 다부동 '볼링앨리'에서는 국군 제1사단과 함께 북한군 제13사단 전차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다시 마산 전선으로 돌아와 방어전투를 이어갔다. 위기때마다 워커장군이 투입하는 낙동강 방어 '소방수'였다. 마이켈리스는 수훈십자훈장을 받았다.

프리먼은 중국을 아는 장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중국 버마 전구에서 근무하며 중국군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전투 방식을 익혔다. 한국전쟁에서는 바로 그 중국군을 상대편 적으로 만났다. 1950년 11월 미2사단 군우리 철수작전에서는 23연대장으로 후위를 맡았다. 이듬해 1월 말 양평 쌍굴에서 중국 제125사단 병력의 공격을 격퇴했다.

1951년 2월 13일, 양평 지평리에서 프리먼의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 등 약 4,500명이 중국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였다. 공격에는 중국 제39·40·42군 예하 여러 사단의 병력이 동원됐다. 국공내전을 거친 정예부대들이었다.

프리먼은 우선 철수를 건의했다. 그러나 리지웨이 8군사령관은 지평리 사수를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프리먼은 주변 고지를 버리는 대신 마을을 중심으로 좁은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병력은 적었지만 화력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었다.

첫날 밤 연대장 프리먼은 박격포 파편에 다리를 다쳤다. 그는 후송을 거부하고 지휘를 계속했다. 그가 짠 방어진지는 그대로 버텼다. 중국은 밤마다 공격했다. 사흘째인 2월 15일 미군 전차부대가 포위망을 뚫고 들어왔다. 지평리는 지켜졌고, 중국 공세는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꺾였다. 제23연대는 이 전투로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마이켈리스는 기동했고, 프리먼은 버텼다. 한 사람은 낙동강 방어선을 오가며 공세를 끊어 전선을 살렸다. 다른 사람은 사방이 막힌 지평리에서 진지를 사수해 전선을 지켰다. 낙동강 상대는 중국에서 전쟁을 배운 북한군이었고, 지평리 상대는 중국군 그 자체였다. 유럽과 중국의 전쟁 경험이 한반도에서 맞부딪친 셈이다.

그때 두 사람은 대령이었다. 세월이 흘러 마이켈리스는 1969년 주한미군사령관으로 한반도에 돌아왔다. 프리먼은 1962년 미 육군 유럽사령관이 됐다. 유럽에서 전쟁을 배운 장교는 한국의 사령관이 됐고, 중국에서 군사를 익힌 장교는 유럽의 사령관이 됐다.

한국전쟁에서 미군 3만 6,57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전사자가 3만 3천여 명이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확인국(DPAA) 집계로 7,300여 명의 행방이나 유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두 연대장은 살아 돌아와 대장이 됐지만, 수많은 병사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한미동맹이 영원불변은 아니다. 미국의 국익과 우리 국익이 언제나 일치할 수는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역시 우리 군의 능력과 안보 환경에 따라 논의할 문제다. 자주국방을 강화하자는 주장 자체를 탓할 이유는 없다.

자주국방과 동맹에 대한 신뢰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군이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미군을 믿을 수 없어서일 필요는 없다. 동맹은 상대를 무조건 믿는 관계가 아니다. 함부로 불신을 입에 올려도 되는 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국방장관의 발언 취지가 미군 불신이 아니었다는 해명은 이해한다. 국방을 책임지는 사람의 말은 신중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낙동강과 지평리에서싸운 희생 위에 세워졌다.

마이켈리스와 프리먼은 한국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들과 함께 싸운 병사 4만 여명은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미군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묻기 전에, 우리가 어떤 역사 위에서 안보를 누리고 있는지부터 돌아볼 일이다.

< 이임성 변호사 / 포천신문 논설위원, 현)법조윤리협의회 회장 , 전)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 전)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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