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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희 / 포천신문사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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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를 보면 일본의 본심이 보인다. 히로히토와 가미가제는 같은 시기, 같은 전쟁의 당사자들 이였지만 운명은 달랐다. 전쟁의 최고 책임자였던 히로히토는 살아 남았고, 가미가제는 20세 전 후의 인생을 화염속에 묻어야 했다.
그 두 당사자들은 이러한 글을 남겼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일본 국왕이었던 히로히토는 떨리는 목소리로 <종전선언서>를 읽었다. "짐이 영국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 안정을 보장하려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지, 타국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라고 했다.
이 무슨 괴변인가. 아시아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니, 그렇다면 침략과 징용, 학살 등 전쟁으로 한이 맺힌 우리나라와 아시아 국가들은 무엇인가. 어찌 이 뿐이랴, 전체 800자 정도 되는 종전 조서는 시종 책임 회피로 일관한다. 자신이 항복을 결심하게 된 변명을 말한 부분은 교활함 자체이다.
"적은 새로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빈번히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여 그 참상은 도저히 측량할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종래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 할 뿐더러 결국 인류 문명까지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제국 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에 응하도록 하였다." 라고 했다. 참 뻔뻔한 논리이다. 히로히토는 연합군을 원망하는 것도 모자라 인류 문명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끝낸다는 궤변을 토했다.
<항복>이나 <패전>이라는 단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공동선언>이라는 말을 슬그머니 집어 넣은 것을 보면 간교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종전조서는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되었지만 반성은 없었다.
다음은 가미가제가 남긴 글을 음미해 보자.
가미가제는 일 왕을 위해 흔쾌히 목숨을 바쳤을까. 그들이 죽기 전날 남긴 유서를 보면 일본 측 주장이 거짓임이 명백하다. 도쿄대 재학 중 징집되어 22세 나이로 전사한 사사키 히치로의 유서는 이러했다. "뭐가 애국이고 뭐가 조국이란 말인가?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개념들 때문에 수 백만의 생명을 해치고 수 천만, 수 억 명의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일을 받아들이라는 것인가?"였다.
"지금은 새벽이다, 아 아 죽고 싶지 않다. 외롭다. 왜 이리도 외로운 것일까." 이 가슴 아픈 유서의 주인공은 교토대 재학 중 24살의 나이로 전사한 하야시 다다오의 것이다. 이제 막 청춘을 누려야 할 나이에 죽음 앞에 선 한 청년의 고백이 서글프다. 가미가제의 진실을 파헤쳐 온 오누키 에미코 위스콘신대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특공대원들이 <천황페하 만세>라며 기쁜 마음으로 돌진했다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그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처럼 두려움에 젖어 눈을 내리 뜨고 비틀거렸다. 어떤 사람은 일어설 수가 없어 억지로 비행기에 떠밀려 들어갔다."
일본은 패전 이 후 지금까지 이들의 애처로운 죽음을 미화하고 왜곡해왔다. 이것이 일본의 맨 얼굴이다. 더 나아가 국제 관계의 숨은 얼굴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다른 나라에 그들 국익을 뛰어넘는 양심을 기대하는 것과, 보편적 정의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가, 국익이 대립하는 국가 간 전선에 양심과 절대 선이 존재할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강하지 않으면 아무 방법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강하면 일본은 얼마든지 부릴 수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 부활을 막는 길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굳건한 한미동맹을 지켜 내면 중공과 일본을 이기고 넉넉히 승리 할 수 있다.
< 이중희 / 포천신문사 고문 >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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