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내 아들이 태어난 해다. 그해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현대정공의 신입사원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당시에는 현장직원과 사무직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울산공장에서 해마다 고기파티를 하던 날이면 현장 직원들은 한상 가득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무직원들의 눈빛에는 묘한 것이 있었다. 그때 정주영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일 잘하는 놈이 잘 먹는다.” 그 한마디는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을 칭찬한 말처럼 들렸지만, 내게는 그보다 훨씬 큰 경영수업이었다.
사람을 먼저 인정하는 것. 사람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 그리고 조직 안에서 눌려 있던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 정주영 회장님은 그 짧은 말 한마디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셨다. 사람을 살리고, 조직을 움직였다. 훗날 정몽구 회장님이 이끌던 울산공장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유인균 사장님이 “제가 갈게요” 하며 현장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는 그것을 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단순한 의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위기의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현장에서 배운 경영이었다.
1998년. 아들은 열 살이 되었다. 정주영 회장님의 소떼 방북이 있었다. 울산에서 시작된 나의 직장생활의 기억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간이 묘하게 겹쳐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나는 포천에 정착했고 어느덧 2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현대에서 배운 것은 이제 기업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지역을 만나고, 밥을 나누고, 문화를 잇고,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일. 돌아보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밑바닥에는 오래전 울산공장의 그 고기판이 있었다. 사람을 먼저 보는 것. 그것이 내게는 경영이었고, 이제는 지역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2026년. 나는 포천에서 백두대간을 노래하고 있다. 지역의 이야기를 모으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K-이음을 생각한다.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장면들이 하나씩 현재로 돌아온다. 1988년 태어난 아들은 이제 서른여덟이다. 2028년이면 마흔이 된다.
1988에서 1998, 그리고 2028.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른다. 나는 그 시간을 강산 하나를 건너온 시간처럼 느낀다. 그리고 그 끝에 손주가 있다. 아들이 받은 것을 다시 그 아들이 자기 아들에게 건네고, 나는 그 작은 손을 잡는다.
내가 말하는 ‘한 달란트’도 어쩌면 거창한 재능이 아닐지 모른다. 내게 주어진 작은 것을 소중히 지키고, 썩히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것. 고슴도치처럼 작고 단단한 김치 한 조각에도 시간이 들어 있고,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는 밥상에도 삶의 역사가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과거를 단순히 추억하지 않는다. 추억은 다시 쓰일 때 작품이 된다. 현대정공의 신입사원이었던 한 사람의 기억이 포천이라는 지역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고, 한 세대의 시간이 다음 세대의 손으로 건너가며, 1988년 서울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세계화가 2028년 LA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소리로 이어지기를 꿈꾼다.
나는 그 소리를 K-이음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과 세계를 잇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것. 오늘 대구에서 열린 CBMC 제52차 한국대회중 나는 다시 일터를 떠올렸다. 내가 지나온 일터. 내가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다음 세대.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은 끊어진 길이 아니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기억 저편의 추억이 오늘의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작품의 다음 장을 손자의 손을 잡고 써 내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