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37호
소 재 지 : 포천시 화현면 연능
비 고 : 이국주 묘(유묘갈)
成宗 18年 (1487)에 出生했다. 이국주 선생의 본관은 연안이고, 연안군 호조판서 숙기의 손이다. 中宗 20年(152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서 大學으로 당세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의장고(儀仗庫)에 낭청(郎廳)이 되었고, 다시 옮기어 제용주부(濟用主簿)가 되었을 때 상배(喪配)를 하고 독신(獨身)이 되었다.
그의 아들 우민(友閔)이 홀로된 아버지의 孤獨함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夫婦가 의논한 끝에 繼母를 맞이하기로 合議하였다. 그래서 널리 혼처(婚處)를 구하는 소문(所聞)이 퍼지고 비안박씨(比安朴氏) 문중에 17歲 少女와 再婚을 하였는데 이때 新郞은 51세였다.
아들 友閔 內外는 새로운 시어머니를 맞이하여 最大限 자식된 道理를 다했고 誠意를 다해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 이때부터 友閔 은 孝子라는 소문이 遠近에 퍼졌고 또한 友閔은 보기 드문 孝子이기도 했다.
李國柱는 새로운 부인을 맞아 단란하게 살면서 67歲에 이르러 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好閔이라 했다. 好閔이 네 살 때 國柱는 이천현감(伊川懸監) 재직중(在職中)에 죽으니 나이 76歲이다.
만약에 큰아들 友閔의 孝誠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아버지는 외로운 인생의 황혼 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오 또한 아들 好閔을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好閔은 바로 이오봉(李五峰)으로서 宣祖朝의 名賢이 되었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연선부원군(延善府院君)의 증직(贈職)을 안겨드렸다.
墓는 抱川市 花峴面 연능(延陵) 안에 있고, 묘비문(墓碑文)은 호음 정사룡(湖陰 鄭士龍)이 찬(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