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前回)에 흙건축의 비용에는 건축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건축 후 집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있으며, 건축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에는 설계비와 자재비와 인건비가 있고, 건축 후의 비용에는 거의 에너지 비용이 차지한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다.
이번 회(回)에서는 흙건축의 건축과정에 있어서 자재비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로 한다. 비용의 원칙은 <경제성>이다.
아무리 좋은 집도 어떤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벗어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고, 실현될 수가 없다.
<자연 건축>에 있어서 자재를 이야기 할 때 원칙이 있다.
<지속 가능함>과 <재생>이다.
<지속 가능함-sustainability>이란 어떤 자재가 수명을 다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흙은 지속 가능한 재료이다.
볏짚도 지속 가능한 재료이다.
그러나 콘크리트는 지속 가능한 재료가 아니다.
폐허가 된 콘크리트 건물은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생>이란 말 그대로 이미 용도를 다한 어떤 자재를 다시 쓰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폐품 활용>이다.
우리 주변에는 철거된 건축물에서 나오는 아직도 쓸만한 자재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것을 실어오거나, 그런 재생자재를 파는 곳에서 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폐타이어에 흙은 다져넣어 집을 짓는 방법 (earthship)이 있다. 재생된 자재는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비용이 절감되고,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자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에너지의 절약은 환경을 보! 존하는 길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가 삼간>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긴 시간을 두고 자재를 모았었다.
<나무>가 연료였던 시대에 기둥 감, 보 감, 서까래 감으로 쓸 수 있는 나무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래서 집 주인이 될 사람은 긴 시간을 두고 하나 하나 모았던 것이다.
요즘 처럼 돈을 주고 한꺼번에 실어오는 그런 형태가 아니었다.
흙집을 짓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자연 건축>은 <느림의 건축>이다.
빨리 빨리 지어서 팔아치우는 건축이 아니다.
내가 살 집을 내 손으로 짓는 건축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건축에 자본주의의 악령- 즉 이윤추구의 악령이 스며들면 이미 그 건축은 <자연 건축>이 아니다.
설령 자연의 재료로 지어졌다 할지라도 <자연 건축>의 의미를 이미 상실한 건축이다.
그러한 건축에는 <사랑-care>이 없다.
건축 속에는 사랑이 베어있어야 한다.
천천히, 조금씩, 하나 하나, 집을 짓는데 들어갈 자재들을 모으라.
돈을 쓰지 말라.
쓰더라도 최소한으로 아껴라.
길을 가다가 집을 철거하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서 얻어라.
철거하는 사람은 폐건축자재를 돈을 주고 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길을 가다가 창문이 버려져 있으면 차에 실으라.
<자연 건축>은 <거지의 건축>이다.
거지가 되라.
만약에 거지가 되기 싫다면 건축 재생자재를 파는 곳을 찾으라.
거기에는 멋진 재생 자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씻고 털면 얼마든지 멋지게 쓸 수 있는 자재가 있으니까.
돈을 주고 삐까뻔쩍한 새 자재를 사용하는 집보다는, 사람의 손을 거친 자재에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멋이 있다.
예를 들어 문과 창문은 똑같은 크기와 형태일 필요는 없다.
여기저기에서 모아 온, 조금씩 형태가 다른 창문을 달아보라.
거기에는, 요즘 건축에서는 좀 처럼 찾아볼 수 없는, 건축의 <리듬의 변화>가 살아있다.
다음 회에서는 인건비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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