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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역사와 문화재 3] 고려말과 조선초 왕의 사냥터 기록남아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포천시 회장 이 종 훈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10월 01일

1, 조선초기의 포천
 
고려가 토지제도의 문란에서 점차 나라가 망해가고 있을 때 홍건적을 격파하고 위화도 회군에서 최영의 군권력을 빼앗아 세력을 확보한 이성계는  온건개혁파로 고려를 재건하려는 정몽주를 격살하니 모든 권한은 신흥 개혁세력인 이성계의 일파에게 집중되었다.

마침내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조선을 개국하게 된다.

조선을 개국한 후 이성계가 태어난 곳을 영흥부로 승격 개편하니 영흥현(지금의 영평)은 이름이 중복되어 영평현으로 개편되고 고려의 위사공신 강윤소의  내향으로 조선조 건국의 큰힘을 실어준 후비 신덕왕후의 선계지역이 되니 현령이 파견되었다.

그 후 태종 년에 전국지방의 개편시에 포주가 포천으로 개명되며 조선조는 경국전에서 성리학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확정하고 전국을 약360개의 목(牧). 부(府). 군(郡). 현(縣)으로 나누어 각 도는 관찰사가 감무하는 형태의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인 군현제(郡縣制)가 실시되었다.
 
조선조 초기의 포천은 성여완이 왕방산으로 은퇴하므로 태조 이성계가 출사(出仕)를 부탁하기 위해서 방문했다는 인연으로 물어고개(問禮峴). 국사봉의 이름이 지금도 전해지며 성석린은 영의정으로 세종조까지 출사했다.

조선왕조 실록에 보면 왕방산(王方山).


보장산(寶藏山)은 왕들의 강무장(講武場)으로 임금들의 사냥터로 활용된 기록이 보이며 이런 연유로 부인터, 호병굴. 용상동등의 이름이 강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왕방산의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에도 왕방산(王方山)으로 나오는 바 왕이 방문하여 생긴 이름이나 왕을 높이는 연유로 방(訪)을 방(方)으로 쓴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인물로는 김종서와 함께 6진 개척에 공을 세우고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양치(楊治)는 세조정란때 피화를 당한 세종비 혜빈의 숙부로 이곳 기지리로 퇴은하였으며 사육신 유응부의 충목단에 세종왕자인 한남군과 함께 종향(從享)되고 있다.

유응부는 무관으로 담력이 쎄고 활을 잘 쏘았다고 전해지며 지금의 무봉리에서 거주하였고 단종복위시에는 별운검으로 선발되어 세조를 시(弑)하려 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죽음을 당하고 숙종조에 이르러 충목이라는 시호와 함께 사육신이 된다.

김질은 조선조 개국공신 김사형의 후손으로 처음엔 단종복위에 참가하였다가 장인인 당시 영의정 정창손에게 밀고하는 밀고자가 되었으며 포천에 묘소를 남기었으며 그 후손 김수동은 영의정까지 오른다.
 
자작리에 부락을 개척하여 살았다는 문화유씨 좌상공파는 영의정 유순과 그 후손 유전이 영의정에 올랐고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포천을 인물의 고장이 되는데 공헌하게 된다.
 
세종조에 쓰여져서 단종조에 발행된 세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포천과 영평이 작은 고을임을 알게된다.

기록에 의하면 포천은 세대가 371호에 인구가 1,222명으로 시위군 60명 선군50명이 배정된 고을이며, 영평은 고작 138호에 419명의 인구로 시위군 33명 선군 37명로  배정된 지역으로 나와있다.

이는 임진왜란 이전에는 포천,영평지역이 인구가 적은 고을이었으나 임진난을 전후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때인 1789년에 간행된 호구총서에는 포천이 호구수 2,598호 인구구가 10,398명으로 영평현까지 합치면 근 2만명의 고을이 되게된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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