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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을의 문화유적] 仁興君 神道碑(인흥군 신도비)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9월 13일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산 18-1에 위치한 인흥군 신도비(仁興君 神道碑)


지정번호 : 포천시향토유적 제28호
 명      칭 : 인흥군 묘 및 신도비
 수      량 / 보유종별 : 1기
 소 유 자(보유자 ) : 이용주
 소 재 지 : 영중면 양문리 산 18-1
 지정년월일 / 고시년월일 : "86. 4. 9
 관리단체 / 관리의무자 : 이재창  

인흥군(1604~1651)은 조선 선조의 제 12왕자로 자는 가온, 호는 취은 어머니는 정빈 민씨이다.

1610년(광해군 2) 7세때 인흥군에 봉해졌으며 1624년 (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왕이 공주로 피난할때 수행하였다.

1627년 (인조 5) 어머니 상을 당하고도 병자호란으로 집상을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왕을 수행했다.

시호는 효숙(孝肅),뒤에 정효(靖孝)로 고쳤다.

묘는 여산군부인 송씨와 합장묘로서 주위에는 전축 기와지붕의 곡담을 둘렀고, 호석이 돌려진 봉분은 높이 2M, 둘레 18.8M이다.

묘비는 1682년(숙종 8)에 세웠고 신도비는 옥개와 귀부를 갖추었는데, 특히 옥개는 팔작지붕형에 골기와가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귀부는 3.73M Ⅹ 2.68M의 웅장한 규모이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낭선군이 글씨를 썼다.

한편, 인흥군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이 낭선군 우(1637~1693)이다.

낭선군은 7,8세 때 이미 한묵(翰墨)에 뜻을 두어 각체(各體)에서의 명필이 되었으며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어 <대동금석첩(大東金石帖)>을 저술하기도 했다.

또 차남 낭원군 간(1640~1699)도 전서와 예서를 잘 써 오늘날까지 여러 곳에 필적을 남기고 있다.

시조 일곱 수도 남아 있으며 <열성어제(列聖御製)>의 편찬자이기도 하다.

낭선군은 2남 2녀를 두었는데 적자가 없어 조카 전평군 곽을 계자로 삼았다.

그러나 전평군도 아들이 없어 밀양군 완(梡)을 계자로 삼았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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