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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에세이] 글로스터의 일편단심

대진대학교 영문학과교수 박 정 근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9월 05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친구도, 사랑도, 부모조차도 세족적 목적을 위한 도구를 삼는 세태다."

리어왕의 공연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광야에서의 주인공 리어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부플롯에 해당하는 글러스터 백작의 두 눈을 리건 일당이 손가락으로 잡아 빼는 부분이다. 

글로스터는 리어왕의 충신으로 고너릴과 리건 두 딸에게 버림받아 광야에서 헤메고 있는 그를 돌보아주었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몰려 불운하게도 눈을 잃고 만다. 

아이러닉하게도 그의 반역을 고자질한 자는 글로스터의 장남이요, 이복형인 에드가를 질투하여 그를 모함하고 부친의 노여움으로 인해 집안에서 축출당하게 만든 에드먼드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자아비판을 통해서 당에 대한 불온한 사상이나 행위를 한 가족마저도 고발하게 한다고 하지만 혈육에 대한 인륜을 저버리게 만드는 것은 인간 행위 중에서 가장 비인간적이요.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고너릴과 리건이 권력욕에 사로잡혀 부친인 리어를 핍박하듯이, 에드먼드 또한 서출이라는 사회적 소외감을 복수심으로 발전시켜 오델로를 파멸시킨 이아고 못지않은 거짓말과 임기응변적 속임수로 글로스터를 속여 에드가를 광야로 축출한다. 

더더구나 그는 신체적 매력을 이용해서 동시에 권력의 실세인 고너릴과 리건의 정부가 되어 왕권까지도 노리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출세를 위해서라면 친구도, 사랑도, 심지어 자신을 낳아준 부모조차도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세속적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고 상품으로 삼는 것이 인간세태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인간의 사악함의 깊은 심연에 다다른 에드먼드 같은 악인이 사회 도처에 횡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악인은 악인을 알아보고, 그의 상품적 가치를 파악한다. 

왕권을 다투던 리어의 악한 딸 고너릴과 리건은 이제는 섹스의 화신인 에드먼드를 자석처럼 빨아드리기 시작한다. 

최종적인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탄을 꼭 닮은 에드먼드를 가슴에 품어야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에드먼드는 그녀들의 심중을 이미 간파하고, 오히려 둘 사이를 경쟁시키면서 자신의 성적 노예로 만든다. 

에드먼드는 권력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종속변수로 만들어 버린다. 

남 앞에서 떠벌리는 달콤한 말들은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덫이요, 적당한 때 목을 조르기 위한 올가미에 불과하다. 

그는 친절과 사랑의 마스크를 쓴 존재, 산속 오두막에서 사는 소녀의 생명을 움켜쥐기 위해서 늑대의 손을 감추고, 떡을 내미는 악마 그 자체이다.
 
셰익스피어는 참으로 놀라운 인물의 대조를 통해서 인간 사회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악한 아들을 둔 글로스터는 서출 아들 에드먼드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아무런 정치적 비젼도 없는 실패자 리어에게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친다. 

에드먼드가 이기적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으로 일관하는 실용적 인간이라면, 아버지 글로스터는 자신에게 해가 될지라도 도덕적 가치가 있다면 목숨을 거는 명분적 인간형이다. 

요즈음 정치를 보면, 그야말로 이합집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당의 정강이나 이데오르기라는 공통분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설혹 있다하더라도 붕당을 만들기 위한 형식요건을 뿐이다. 

금 뱃지를 달기 위해 어떤 은인이라도 벗어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 실용적 가치가 떨어지면 부모의 윤리도 벗어던지는 에드먼드와 다름없다. 

자신을 공천해서 금 뱃지를 달게 해준 은인과 같은 정치적 선배라 할지라도 차기에 걸림돌이 된다면 등을 돌리는 정치인들의 행태에서 도덕적 품위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글로스터 같은 인물이 가끔 등장하기에 성인으로 우러러 볼 수도 있고, 도덕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보다.
 

글로스터는 권력의 장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광야에서 벌거벗은 늙은 왕에 대해서 충성과 연민을 보낸다. 

두 딸들의 무소무위의 힘이 리어를 돕는 자에 대해서 무서운 칙령을 내려 위협하고 있지만, 진정한 인간이라면 자신이 한 때 모셨던 왕에 대해서 모른 척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인간적 양심이 시키는 대로 리어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미 코델리아와 캔트 백작 등 리어왕의 지지 군대가 오고 있지만 지금 어려운 시기에 리어를 방치하면 왕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에드먼드에게 왕을 도우라고 지시를 내리는데, 기득권의 아버지를 쓰러뜨려야 새로운 세대가 뜬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악마의 화신 에드먼드라는 것을 모른다. 

글로스터의 잘못이 있다면 등하불명(登下不明)이라는 쉬운 진리를 몰랐다는 잘못이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고너릴과 리건 뿐이 아니라 그가 신임하는 아들 에드먼드라는 것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다. 

결국 회복할 수 없는 배신감에 싸여 도버의 낭떠러지에서 자살하려다 자신이 버렸던 장남 에드가에게 구원을 받지만, 그는 역시 끝까지 자신의 충성심을 지킨 인물로서 평가를 받는다. 

세상이 결코 권선징악적인 코드로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둠의 세계에서 조그만 양심의 불빛은 더욱 빛나 보인다고나 할까. 

아무런 원칙 없이 이합집산의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요즘의 정치세태에 대해서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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