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1년 마스크를 쓰고, 모임을 자제하고,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는 새로운 일상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폐렴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우리의 삶이 이렇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달 26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신은 전염병에 맞서는 인류의 무기이자 반격입니다. 전염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염돼 목숨을 잃기도 하고, 또 백신으로 전염병을 극복해오며 지금의 삶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라고도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에게 익숙해진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적인 유행병을 뜻하는 용어 ‘팬데믹(pandemic)’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 12일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WHO가 지정하는 전염병 유행 경고 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6등급이 바로 팬데믹입니다.
‘팬데믹(pandemic)’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모두’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pan’과 ‘사람’을 뜻하는 ‘Demic’이 합쳐진 용어로,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감염되는 질병’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430년 그리스 아테네에 전염병이 강타합니다. ‘아테네 역병’으로도 불리는 이 병은 2년에 걸쳐 두 차례 크게 창궐했고, 자그마치 아테네 인구 10만 명이 이 병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이때 인구가 크게 감소한 아테네는 점차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흑사병(Black Death)’라고도 불리는 ‘페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염병입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몸이 검게 변하여 일주일 안에 사망한다고 하여 ‘흑사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페스트는 창궐할 때마다 인류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541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교역선을 타고 들어온 쥐들을 따라 페스트균이 퍼졌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가장 큰 도시였던 만큼 감염자가 급증했고 매일매일 나오는 수천명씩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페스트가 지금처럼 유명한 전염병이 된 것은 14세기 유럽에 남긴 큰 피해 때문입니다. 몽골제국이 다스리던 황허 유역에서 페스트가 발병한 뒤, 몽골제국의 영토 확장을 따라 페스트가 유럽까지 퍼졌습니다. 1340년대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에 유럽인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치료법은 없었고, 감염을 막을 방법도 없어서 시신이 길거리에 그대로 쌓였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346년에서 1350년 사이에 유럽에서만 7천5백만 명이 페스트로 죽었는데, 이는 당시 유럽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요즘은 해외여행도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 나라들은 자국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14일간 ‘자가격리’를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잠복기로 알려진 14일 동안 혼자 격리된 생활을 하며 증세가 나타나는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격리의 모습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하던 1300년대 말, 베네치아 공화국은 페스트 전염지역에서 오는 선박들을 항구에 진입하기 전 40일 동안 인근 해역에 정박하게 하였습니다. 40일 동안의 격리가 끝난 뒤, 배 안에서 페스트 환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서야 선박은 베네치아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입국 후 14일 자가격리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실제로 영어 단어로 ‘격리’, ‘검역’을 뜻하는 ‘quarantine’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40일 격리 제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콰란타(quaranta)’가 이탈리아어로 ‘40’을 의미하고, ‘40일간’은 ‘콰란티나(quarantina)’인데, 이것이 바로 영어 ‘quarantine’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페스트, 흑사병이 단순히 많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여 잘 알려진 것만은 아닙니다. 페스트 때문에 유럽의 많은 인구가 죽었고, 인구 감소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임금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농노가 떠받치던 중세 봉건사회의 붕괴를 불러왔습니다. 또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던 종교지도자마저도 전염병을 막지 못하자, 사람들은 교회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이는 종교개혁의 촉매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19 역시 우리의 삶을 많은 부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훗날 역사 속에서 코로나19가 바꾼 새로운 표준, 뉴 노멀(New normal)은 어떻게 기억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