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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의 연재 수필]아빠 어렸을 적에(45-최종회 )

불장난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1월 21일

‘불났다’하면 제비울, ‘싸웠다’하면 심재, ‘농약 먹었다’하면 먼두둑, ‘도둑맞았다’하면 만가대란 말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동네는 불이 잘 났지요.

동네에는 집집마다 거의 불 한 번씩 나지 않은 집이 없다시피 하답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아이들의 불장난을 못하게 할 수 밖에요.

불장난은 성냥을 가지고 온 사람이 대장입니다. 성냥을 가져온 사람이 먼저 불을 지피면 불을 쪼이고 싶은 사람은 나무를 해 와야 불을 쬘 수 있습니다.

한 아이가 땔감을 주워 오기 싫어서 개울가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고목나무에 불을 붙였습니다.

고목나무는 어른들의 팔로 두 아름쯤 되는 나무였는데 가끔 무당들이 천을 걸고 치성을 드리는 곳이기도 하지요.

고목나무는 처음에는 불을 붙이려 하여도 잘 타지 않더니 불이 붙자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하였지요. 우리들은 멀리서 불을 쪼이며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야, 큰일나겠다. 저러다 다 타버리면 어떻게 하지….”

워낙에 마을의 중앙에서 몇 백 년 이어져 내려오던 고목나무인지라 신앙처럼 떠받들어졌고 아이들이 불을 질러 놓고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불이 어느 정도 붙자 아이들은 불을 끄자며 물을 퍼다 끼얹고 모래를 뿌리며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목나무는 이내 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없어지고 말았지요. 미신을 믿는 동네 몇몇 아주머니들은 ‘큰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하였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매서운 날도 우리들은 군부대 밑에 있는 작은 저수지로 썰매를 타러 갑니다.

한동안 집채기 놀이를 하며 썰매를 타다 보면 실증이 나기도 하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접근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군부대 철조망 근처에서 불장난합니다.

그날도 불장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람이 갑자기 세게 불더니 불길은 순식간에 바짝 마른 풀섶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불길이 치 닿는 철조망 안에는 군부대 수송부가 위치하고 있었거든요.

불길의 맹위는 대단하였습니다. 불길은 군부대 쪽을 향하여 맹렬하게 타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줄행랑을 놓기 시작하였고 불장난에 가담하지 않았던 아이들마저 모두 달아났습니다.

군부대에서는 비상이 걸렸고 급수차와 수많은 군인들이 동원되어 거의 다 타 들어간 풀숲의 불길을 잡았습니다.

마을의 앞 벌판에는 탈곡을 하고 난 볏짚을 쌓아 놓은 볏짚 낟가리가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볏짚은 보통 소의 먹이로 사용하였지만 땔감으로도 사용하고, 새끼줄을 꼬거나 가마니 멍석 등을 짜는데 쓰이는 버릴 것이 없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농사의 부유물이지요.

그날도 개울에서 놀다 추위와 장난기를 이기지 못하고 짚단을 태우며 불장난을 하였습니다.
짚단을 태우니 짚에 매달려 있던 벼 알갱이들이 톡톡 튀면서 하얗게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들은 입이 시커멓게 주워 먹었습니다.

“야, 우리 한꺼번에 다섯 단쯤 불을 놓아보자.”

한 아이는 집단을 가져다 불을 놓았고 개울 바람 앞에 볏짚 불씨는 하늘로 날아가며 큰 볏짚 낟가리로 옮겨 붙었습니다. 그 불은 사흘이나 탔고, 후일 그 볏짚 주인은 다른 동네서 소먹이로 볏짚을 사와야만 하였습니다.


김 순 진
시인, 소설가, 수필가
http://cafe.naver.com/yob51
011-9123-4422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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