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9-30 오전 09:24:1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문화

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141)

두문동(杜門洞)과 ‘퇴은(退隱)’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8월 31일

‘충신은 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란 말은 벼슬길의 선비가 지녀야할 지고(至高)의 덕목이다. 즉,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된다.

‘두문동(杜門洞)’이라고 하면 고려가 망하자 고려의 충신들이 선비의 도리를 다 하고자 새로 집권한 조선조 태조 이성계에게 협력하지 않고 개성 인근 두문동 마을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은둔 생활로 일관하게 되는데 바로 두문동의 어원(語源)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고려 충신 두문동 72인 외에도 조선조 충신 내고향 포천 출신 ‘양치(楊治)’선생이 있으니 사육신(死六臣)의 버금가는 생육신(生六臣) 같은 충신이었다.

기지리 두문동이 바로 양치 선생께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시고 은거(隱居)하시던 곳이다. 호가 퇴은(退隱)이었음도 이를 웅변하고 있다. 양치선생은 청주인으로 고려조의 벽상삼한청국공신 양기(陽起)님의 후손으로 호조판서 천진(天震)의 아들이다. 정종2년(1400년) 태어나 성종14년(1483년)까지 사셨는데 40여년간 기지리 두문동에 은둔 끝에 86세로 깨끗한 지조 높은 생을 마감하셨다.

양치선생께서는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발탁되어 세종조에 김종서 장군이 북방여진족을 물리칠 때 6진 개척의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영광군수 함길, 황해, 병마절도사에 올라 무관 최고의 용맹을 떨치셨으나 김종서 장군 못지 않은 충절의 장군이셨음을 알 수 있다.

수양대군이 충신 김종서를 비롯한 단종을 모시는 세종대왕과 문종의 고명대신을 죽이고, 몰아내고, 세조임금으로 등극하니 충신 양치 선생은 이에 굴하지 않고 기지리 두문동에 은둔하여 40여년의 은둔생활을 한 것이었다.

1691년(숙종 17년) 236년 만에 모든 단종조 충신들의 관작이 복권되고 충렬사, 충신각, 조사단 등에 286위가 배향되어 그 님들의 충절을 기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내 고향 포천의 ‘양치’선생들께서도 충목단(사육신 유응부선생의 정문 및 제단)에 함께 배향되었다.

사육신과 생육신에 버금가는 충신이 또 한 분 함께 모셔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기지리 두문동에는 양치선생의 후손들이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님의 뜻을 기리며 살고 있다.

※양치선생 후손이자 퇴은(양치)공파 종친회장 양재창(現 포천향교 전교).

필자연락처 02-932-2434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8월 31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이름 비밀번호
개일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겨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 포천시 해룡로 130-38 (동교동)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편집인 강신옥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아50080 / 등록일 : 2009년 6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