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 명 수 대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I 동농 이해조가 1912년에 발표한 『산천초목』은 1910년 초반기에 대한민보에 연재한 『박정화』로 알려져 있다. 이점은 최원식 교수의 설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필자는 대한민보에서 이 작품을 발견했다. ‘신소설 박정화’란 제목으로 1910년 3월 10일부터 5월31일까지 총 62회 걸쳐 연재되었는데, 이해조는 여기서 수문생이란 낯선 필명을 사용하였다. 필자는 1912년 1월 20일 유일서관에서 간행된 작자 미상의 신소설 『산천초목』이 바로 대한민보에 연재된 『박정화』와 같은 내용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총독부의 검열 때문일 것이다.” (『한국근대소설사론』 105) 이해조는 한일합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하였던 수도 서울의 풍속을 지켜보면서 이를 한편으로는 풍자하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의 원각사, 연흥사, 장안사, 단성사 등 극장 번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때로는 지겨운 현실을 잊게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선 이 작품에서 기자 출신답게 당대의 핵심적인 권력층의 집안이었던 희대의 호색가 이시종을 중심으로 한 친일 권력층과 사대부들의 성적 방종이 극에 달한 시대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한다. 최원식 교수는 이 당시 당당한 세도가들이었던 친일 권력층의 성적 문란을 지적하면서 이시종은 바로 이와 같은 세태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이완용이 아들 명구의 처 임씨를 품고, 이지용의 처 홍씨와 민영철의 처 유씨 등 친일부인단체를 만들어 통감부의 고관들과 공공연히 놀아났다. 작가는 박참령의 첩과 잠통하는 이시종의 형상을 통해 당시 친일고관 가문에 대한 일반민중의 분노를 대변하였던 것이다.”(107) 루까치가 던지는 “소설 속에 왜 타락한 인물이 등장 하는가”라는 질문에 입각하여 이러한 인물들의 의미를 살펴보면 타락한 문제적 인물이 타락한 문제의 사회를 적절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적으로 타락한 인물에 의해 자연주의적 요소가 작품의 중심 주제로 부각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논자는 이 작품을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보다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고 싶다. 그 예로 강한 열정에 바탕을 강릉댁의 자아추구와, 작가의 플롯전개를 들 수 있다.『산천초목』은 플롯과 인물의 짜임새가 매우 탄탄하다. 그런데 플롯이 인물을 압도하기보다는, 반대로 인물의 성격이 플롯을 이끌어 가는 측면이 강하다. 자연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부각시키려 하면 플롯과 인물간의 관계에서 우연성이 빈번하게 작용될 수 있는데도 작가는 인물들이 의지를 가지고 행위를 선택하게 상황설정을 하고 있어 우연적인 측면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성애장면을 한 대목도 묘사하지 않고 인물들이 욕망에 대처하는 행위의 선택을 집중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특히 작가는 이시종에 대해서 초반에 약간 묘사할뿐 대부분 중심인물 깅릉댁을 축으로 한 주변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논자는 이 작품을 성적으로 문란한 시대상황 자체에 관점을 두기 보다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환경을 주체적으로 극복하려는 강릉댁의 모더니즘적 자아추구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II 여기서 이 소설의 주요 플롯을 자세히 살펴보자. 모 대관의 조카인 이시종은 평소 장안의 기생이라든지 삼패(조선말기 기생 가운데 가장 낮은 계층), 은군자(몰래 몸을 파는 여자), 얼굴이 반반한 남의 첩들을 누구쟁이(뚜쟁이 노파)를 매수하여 잠통(몰래 간통)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이시종은 경복궁 대궐 앞 황토마루(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길)를 향하여 내려오던 중 사인교(가마)를 타고 가는 강릉댁을 보고 혼이 빠진 채 자신이 탄 인력거를 보내고 강릉댁의 거처를 직접 알아낸다. 신마마를 통해 강릉댁이 박참령(무관직)의 작은 마누라임이 밝혀지고, 박참령이 이시종과 존장(나이가 16세 이상 많은 어른)이자 이시종의 아버지와 동년배의 아는 사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신마마는 이시종과 강릉댁을 매개하는 누구쟁이로서 앞으로 두 인물의 만남과 이들의 애정행각의 전망에 대해 한층 호기심을 조성시키는 감초역할을 한다. 이시종은 연흥사에서 뽀이를 통해 가비차를 보내어 유혹하고, 강릉댁은 신마마의 감칠맛 나는 첩첩이구(능란한 말솜씨) 언변에 넘어가 구경을 못다 하고 이시종이 기다리는 집으로 신마마를 따라 간다. 집의 방안이 정결히 꾸며져 있고, 이시종이 삼편주(샴페인)를 대접하자, 강릉댁은 이시종에게 빠져든다. 이시종과 강릉댁의 관계는, 암놈 수놈이 멋거리지게 노는 비둘기처럼, 인천에서 딴 살림으로 이어진다. 박참령은 본래 풍류재상으로 애색을 매우 찾고 오입도 많이 하고 작첩도 여럿 하였다.
그러나 박참령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강릉댁에게 제 소원대로 다해주었는데, 강릉댁은 동무 집을 다녀오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나간 후에 이시종과 살림을 차린 것이다. 이 단계는 분규의 과정으로서 강릉댁은 풍족하고 순탄한 생활과, 이시종의 애정에 대한 전망 사이에서 고민하다 호색가 이시종과의 사랑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강릉댁의 친정의 곤궁한 상황과, 늙었지만 박참령의 너그러운 마음, 이시종을 향한 강렬한 사랑, 그리고 이시종의 변심 사이에 갈등하는 계기가 된다.
강릉댁의 가출로 첨예한 갈등이 일어나면서 강릉댁을 둘러싼 특수한 상황과 인물들의 특성이 드러나고, 이는 소설의 갈등을 매개함과 동시에 이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첫째, 박참령이 강릉댁을 잊지 못하고, 줄곧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는 비록 호색가이지만 천성이 착하다는 점과 늙은이로서의 소외감에 따른 불안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둘째, 강릉댁의 친정 부모는 자식의 장래를 아끼는 마음과, 자신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박참령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결국 박참령을 구원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강릉댁이 부모를 걱정하는 마음에 달포 남짓 시간이 경과한 후에 인천에서 친정에 이시종을 칭찬하고 박참령을 욕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들은 이를 박참령에게 보여주고, 이를 통해 박참령은 강릉댁을 다시 불러들인다. 셋째, 친정부모와 박참령의 따뜻한 심성으로 인해, 제1단계의 갈등은 해소가 되나 강릉댁이 이시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다음 단계의 갈등을 매개한다. 넷째, 강릉댁은 쥐불어멈과 모의하여 장국에 독을 타서 박참령을 죽이려는 순간 강릉댁의 어미가 나타나 이를 방해하고, 결국 박참령이 좋아하던 애견들이 장국을 먹고 대신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강릉댁이 집터가 세서 그렇다고 기지를 부려 파국은 모면한다. 다섯째, 박참령과 친정 어미의 굳은 심성이 파국을 막아 보지만, 강릉댁의 이시종을 향한 그리움과, 그것의 여파는 한편으로는 다른 갈등을 일으키는 듯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강릉댁은 또 다시 가출을 하여 이시종과 딴 살림을 하나 이시종의 애정이 예전처럼 강렬하지 못하고 식어 있음을 알고, 반대로 박참령에 대한 측은 한 마음이 살아나 박참령의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반면, 박참령은 강릉댁이 가출한 사이에 장국 사건의 내막을 알고 강릉댁을 향한 섭섭한 마음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자리 잡는다. 박참령은 본래 마음이 영악치 못한 터라 강릉댁을 거절하지 못하고 수용하나 뒷방 한 곳에 처소를 정하여 의복과 음식을 제공하나 가까지 앉아 따뜻한 이야기 한마디 아니하고 지낸다.
III 『산천초목』의 중심 플롯에는 이시종과 박참령의 성격, 강릉댁과 친정 부모의 성격과의 상호관계성이 충분하다. 이시종과 박참령은 저마다 오입쟁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으면서도, 이시종은 변화무쌍한 기질을 지녔고, 대신 박참령은 따뜻한 애정을 갖추고 있다. 강릉댁과 친정 부모는 당시의 주류사회의 변방에서 주변화 된 인물들이지만 강릉댁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결여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내적인 정열이 있고, 대신 친정부모는 독립의지는 약하지만 사람의 도리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두 부류의 양반사회의 속성, 친일세력과 수구세력 등의 문제와 결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천초목』을 크게 두 줄기로 압축시켜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은 한편으로는 자연주의의 단초가 될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심인물인 강릉댁이 유교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이를 주도적으로 대처해 가는 과정을 주 포인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시종, 박참령, 자신의 친정 사이에서 강릉댁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비정한 환경적인 요소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전자와 관련되겠지만, 이 소설은 사랑에 충실하려는 강릉댁의 의지에 관점을 두면 모더니즘적 요소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자연주의적 인물이 언제나 환경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반면, 모더니즘적 인물은 환경과의 관계에서 줄곧 고립되어 수동적으로 머물면서도 자기만의 자아를 추구하거나, 아니면 당당하게 환경에 대응하여 자신의 자아를 모색하는 측면을 보인다. 최원식 교수는 이 소설이 현대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평한다: “이해조는 대담한 소설가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춘향이처럼 변사또의 유혹에 끝까지 저항하면서 이도령과의 약속을 끝내 지켰던 바, 이와 같은 일방적 삼각관계라는 이야기틀은 신소설에서도 완강하게 지켜져 왔다. 그런데 이해조가 이 작품에서 그 완강한 이야기 틀을 처음으로 해체하였던 것이다. ...산문적 생활로부터 해방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진 강릉집은 보봐리 부인이나 안나 까레니나로 발전할 소지를 다분히 갖춘 여인이니, 현대성은 오히려 『박정화』에 두드러진다.”(113)
『산천초목』에는 구원자가 없다. 강릉댁이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자아탐구소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결말이 예상을 뛰어 넘는 극적 효과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가령 강릉댁의 투신자살 같은 결단) 예측 가능한 종결로 매듭되고 있다는 점은 아직 유교사회의 틀을 완전히 뛰어 넘지 못하는 작가의 한계를 노출한다고 볼 수 있다. 강릉댁이 또 다른 충격적인 행동을 결행하지 못하는 것은 친정 부모를 비롯하여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한 분명한 자주성 내지 주체성이 여전히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논자는 여기서 이 작품을 모더니즘적 요소로 보는데 어느 정도 주인공의 인식의 한계성도 함께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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