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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135) 저술가 성해응(成海應)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7월 01일

성해응(成海應, 1760년 영조 36년∼1839년 헌종 5년)은 조선시대 문신이며 학자인데 소흘면 초가팔리 적암촌에서 출생, 성장하였으며 가산면 금현리에 묘가 있다.(요즈음 사용하는 말로 표현하면 오리지날 포천분이시다)

자(字)는 ‘용여(龍汝)’ 호(號)는 ‘연경재(硏經齋)’님의 자나 호를 보아도 쉽게 인물됨을 알 수 있어 재미있다. 어려서부터 율골전서를 보고 흡모하여 율곡선생을 평생에 거울로 삼았다.

정조 7년 진사시, 1788년 규장각 검서관, 내각에 근무하면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서명웅 등 북학파와 교유하였다. 정조 14년 왕명으로 ‘춘추좌씨전’을 편찬하는데 참여하였고, 순조 1년 ‘통예원인의’, ‘금정찰방’을 지냈으며, ‘음성현감’을 지내기도 하였다. 순조15년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이서구님과 함께 순조25년 ‘존주휘편’을 끝마쳤다.

한학과 송학의 결합으로 박문약예함을 중심으로 삼았다.

인간에게는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이 가장 근본적이라 하여 이에 주력하였으며, 특히 ‘경학’에 치중하여 ‘예기(禮記)’와 ‘시경(詩經)’에 관한 저술이 많다. 우리나라의 ‘전승과지리’ 중국 역대 ‘왕실의 세계 및 유민(世系遺民)’, ‘조선과 중국과의 외교관계’, ‘풍속과 법제’, ‘경제’ 등 다방면의 저술을 남겼다. 실학 전성기의 인물로 조선 후기 주자학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계속될 때 경학의 이념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박학적이고 고증학적인 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씨에도 능하며 유필(遺筆)이 ‘근묵(謹墨)’에 전하여 저서로는 ‘연경재 전집(硏經齋全集)’, ‘동국명신록(東國名臣錄)’, ‘주한잡사고(周漢雜事考)’,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 등 다양하다. 님의 인물됨은 여러문헌에 남아있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직 후, 아들의 임지인 목천과 왕방산 아래의 고향 마을을 오가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또 현임 시절에는 ‘어제(御製)’를 간행하기 위한 작업에도 참여하였다.(순조 13년 1813년:정조어제) 음성현감시절에는 선정을 베풀어 그의 성품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순조시 학문의 시류인 의리만을 신봉하고 정이(程利) 형제와 주희(朱熹) 만을 숭상하는 당시의 실태를 비판하는 ‘박문약례(博文約禮)’함을 중심 삼는 바는 고증학의 비판적 입장에 섰던 홍석주(洪奭周)와 일대 논변을 펼치기도 하였다.

우리는 성해응님의 학자다운 면모와 저술가이자 학자로서의 위대한 성애를 살펴보았다. 세상사람들은 조건없이 정승자리에만 있었으면 위대한 인물로 치부한다. 의리도 지조도 모두 버리고 높은 벼슬자리만 탐하는 자를 어찌 참 선비라 하겠는가? 우리는 참 포천의 선비였던 성해응님의 생애와 저서를 통해 선비정신과 학문의 길을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연락처 02-932-2434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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