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라이산에는 인근 군부대의 소총 사격장이 있습니다. “야, 우리 타켓트 훔치러 가자!” 창채가 말하였습니다. “그래, 그거 훔쳐다 세워놓고 활쏘기 놀이하면 좋겠다. 잘 꽂히고….” 내가 맞장구쳤습니다. 사격을 하지 않는 일요일을 택하여 우리는 사격장으로 타켓트 과녁을 홈치러 갔습니다. 타깃은 사람의 형상으로 되어 있고 화살이 잘 꽂히고 좋습니다. 우리들은 작은 과녁과 큰 과녁 두개를 훔쳐다 개울가 모래사장에 묻어 놓고 타깃에다 학교에서 가져온 분필 토막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점수를 먹여놓고 놉니다. “일채 팔십 점!” “돈채 칠십 점!” 과녁 뒤에 숨어서 화살 쏘는 것을 지켜보며 점수를 채점하던 심판이 된 나는 다 쏜 줄 알고 과녁에서 나올 때였습니다. “으억!” 내가 화살을 맞고 쓰려졌습니다. “야, 큰일 났다. 어떻게 하니? 주장이 쓰러졌어.” 아이들은 야단법석입니다. 이마엔 화살이 박혀 있습니다. “어서 화살 먼저 빼!” 누가 외쳤는지 화살을 빼고 나니 이마엔 피가 줄줄 흐릅니다. “야, 어서 쑥 뜯어서 돌로 찧어 와!” 쓰러졌다 일어난 나는 돌로 빻은 쑥을 이마에 붙이고 손으로 누르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니? 뭐하다 다쳤어?” 다급하게 묻는 말에 “활쏘기 놀이하다 이마에 꽂혔어요.” 제환이가 대답합니다. “그래, 아이구, 내 너희들 활 가지고 놀 때 알아봤다. 그만큼 활 쌈하지 말라구 했는데…. 다른 앤? 다친 애 없니?” 엄마는 자기 자식보다 남의 집 아이 걱정을 하십니다. 나는 엄마와 함께 곧바로 근처 군부대 의무대로 갔습니다. 다행히도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습니다. M1 탄두의 납을 녹여서 만든 뾰족한 화살촉도 내 돌머리를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나 봐요. 그 날 이후 내 이마엔 훈장처럼 그 상처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은 군인들의 세워 놓은 사람 형상의 타깃마저 훔쳐다 세워 놓고 화살의 과녁으로 삼고 놀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개구쟁이들이지요?
떡장수 죽은 곳
교실이 모자라서 2, 3학년만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공부를 하였습니다. 일주일은 오전반으로 수업을 받고 일주일은 오후반으로 수업을 받습니다. 집집마다 시계가 흔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떤 아이들은 오후반이면, 오전 내 놀다 시간을 몰라 지각하거나 학교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 오늘부터 오후반이에요. 도시락 싸 줘요. 학교에서 놀다가 공부하게요.” “그래라, 너무 놀다가 제 시간에 수업 못 들어가지 말고 학교에서 놀아라.” 새벽이면 일터로 나가시는 엄마는 차라리 도시락을 싸 주면 일터에서 집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주셨습니다. 오전에 학교에 와, 나무 그늘에서 공기놀이나 고누를 하다가 도시락을 까먹고 오후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들도 많았지요. 수업이 끝나면 다섯 시가 훨씬 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곧장 집으로 가나요? 새둥지 찾으랴, 무 뽑아 먹으랴, 고구마 캐 먹으랴, 옥수숫대 꺾어 먹으랴… 자연 모두가 아이들의 주전부리 감이고 놀이터였으니까요. 도자기를 굽던 터가 있어 도장골이라 불리는 곳은 우리 마을에서 학교 쪽으로 약1km지점에 있습니다. 도기를 굽던 사람이 살던 곳이랍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무슨 이유인지 그곳을 "떡장사 죽은 곳"이라 불렀어요. 아이들은 그곳에서 떡 장사를 하던 아줌마가 죽었다고도 하고, 떡장사를 하다 죽은 할머니를 묻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곳을 혼자 지날 때면 무서움을 느낍니다. 학교와 동네와의 거리는 십 리나 됩니다. 오후반을 마치고 십여 리 길을 장난치며 걸어오는 아이들은 이내 어둡기가 일쑤지요. “야,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어떤 아이는 마당가 댑싸리 자라는 숲에서 똥누다가 늑대가 물어가다 떨어뜨려서 엉덩이 살이 하나도 없데…” “늑대가 어디 있냐? 본 사람 하나두 없다더라.” “우리 큰 아버지는 새릉 모퉁이 돌아오다가 호랑이두 보았대.” “작년 겨울에 해창이네 집 아래 논에는 호랑이 발자국이 무지 많았다드라 야!” “철주네 개 있지? 그 까맣고 큰 개? 그 개는 밤에 자는데 하도 짖는데도 무서워서 못 나가 보았다가 아침에 나가보니 개털만 몇 개 있더래. 호랑이가 물어가고…” “야, 저 하늘에 나르는 독수리는 우리 같은 애들도 채간단다.” 왜 저녁에 돌아올 때면 꼭 무서운 얘기가 나올까요? 허기진 배를 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우리들에게 "떡 장사 죽은 곳"을 지나는 것은 위기입니다. 가끔, 독수리나 꿩매(새매는 작고 꿩매는 덩치가 큼)라도 하늘에서 빙빙 돌면 우리들은 더욱 무섭습니다. 우리는 오후 수업을 마치고 "미주알고주알"하며 늦게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을의 끝인지라 스산한 바람이 불고 하늘 위에서는 수리매(독수리처럼 큰 매)가 우리들을 목표로 정한 듯 한군데서 날개를 저으며 멈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를 쫓느라 긴 장대에 단 비닐이 몹시도 펄럭입니다. 우리들은 극도의 무서움을 느껴 군인들이 눈이 많이 내리면 도로에 뿌리려고 만들어 놓은 적사장의 지붕 밑에 몸을 숨겼습니다. 깡마른 몸에 배만 불쑥 나온 이디오피아 난민 같은 우리들은 허수아비나 멀리 썩은 나무 등걸에서 나오는 형광 빛이 도깨비로 보였습니다. “귀신이다. 옴마야…”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떡장사 죽은 곳을 지나올 때 누구 하나라도 먼저 달아나면 정말 죽기를 다해 달렸습니다. 떡 장사 죽은 곳"을 지날 때면 우리들은 고무신을 벗어 들고 "걸음아 나살려라" 줄행랑을 놓았는데 가장 늦게 따라오는 아이는 울지 않을 수가 없답니다. 먹거리가 신통치 않았던 우리들에겐 허깨비가 자주 보였고 별게 다 무서움이었지요.
김순진의 연재수필 - 아빠가 어렸을 적에(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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