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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의 연재수필

아빠 어렸을 적에 (1) 자두서리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8월 12일

"게 누구냐! 이런 경을 칠 녀석들!"
초등학교 2학년의 봄날.
어느 토요일 오후입니다.
"새 둥지 맡으러 갈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찔레 꺾어 먹으러 갈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나는 10리가 넘는 하교 길을 혼자 오기 싫었으므로 아이들을 선동하였습니다.
"나!"
광명이가 먼저 내 엄지손가락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나두 갈래"
우리 동네 살던 기억이 있던 석인이가 그 위에 손탑을 쌓으며 붙었습니다.
"야 우리 집에 들러서 가방 내려놓고 가면 안돼?"
민기가 물으면서 손탑을 쌓습니다.
의견이 모인 우리들은 의기양양하게 교문을 나섭니다.
민기네 집은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서 조금 옆에 있는 마을 노곡리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들 민우네 집을 들러 우리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동초등학교로부터 10여리 떨어진 우리 동네는 면소재지의 최남단 마을이었기에 좀처럼 면 소재지에 사는 장암리 아이들이 놀러 오는 일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엄마! 엄마! 밥 있어요."
싸립문을 열고 숨을 헐떡이면서 엄마를 불러대니 엄마는 들에 나가셨는지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엌으로 들어가 무쇠 솥을 열어보니 솥에는 감자가 섞인 찬 보리밥이 반 솥쯤 담겨 있었지요. 나는 지난 가을에 딴 바가지에 밥을 푸고 사과궤짝 올려진 찬장을 뒤져 고춧가루가 한 두 개 묻었을까 말까한 얼가리 배추김치를 하얀 사기사발에 한 사발 퍼 들고 양은 숟가락과 대나무 젓가락을 한 웅큼 들고 쪽마루로 나왔습니다.
"야, 먹어!"
장암리 면 소재지에서 온 아이들은 반찬이 없는 탓인지 감자 보리밥이어서인지 두어 숟가락 먹는 둥 마는 둥하더니 산으로 가자고 재촉하였습니다.
"야, 밥 그만 먹고 빨리 새둥지 맡으러 가자!"
명광이가 채근했습니다.
밥 바가지를 주섬주섬 부뚜막에 가져다 놓고 부엌문을 나서려니 한 동네에 사는 제환이와 상채, 그리고 해창이가 왔습니다.
우리들은 찔레를 꺾어 먹고 새둥지를 찾을 요량으로 고려장터가 있던 옹장골로 향하였습니다. 옹장골은 늙은이를 장사지내던 골짜기란 뜻입니다.
옹장골은 병기중대 옆에 있는 응연이네 집을 끼고 돌아야 했습니다.
우리들은 응연이네 집 싸리 울타리를 돌아 서려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두나무에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포천 지방에서는 자두를 왜주라 부릅니다. 돌이 수없이 던져지고 왜주가 우두둑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돌을 던지다 시큰둥하였는지 아예 올라가 나무를 뒤흔들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나무 밑에 있는 얼갈이배추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밟고, 왜주를 주우며 왜주 따기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을 칠 녀석들!"
응연이 할머니께서는 나무로 된 대문을 삐걱 열고 나오시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응, 작은 양주댁 큰 아들 놈이로구나. 너, 니 에미한테 혼날 줄 알아라!"
응연이 할머니는 내 얼굴을 알아보시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내 옹장골이 있는 산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응안 할머니는 따라 오시지도 않았는데 우리들은 허겁지겁 제풀에 무서워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도망을 쳤을까...
우리들은 숨을 헐떡이며 옹장골의 어느 무덤을 베고 누웠습니다.
우리들을 따라온 검둥개 까미가 갓 태어난 쥐새끼 몇 마리를 물고와 낑낑 거렸어요.
우리는 시경이도 꺾어 먹고 삘기도 뽑으며 새둥지를 찾았습니다.
놀이가 시들해진 우리는 또다시 묘를 베고 누어 종알거렸습니다.
"야! 내가 옛날 얘기 해 줄까?"
내가 제안했습니다.
"응, 그래. 어서 해 봐!"
명광이가 대답했어요.
"옛날에 바보 용팔이가 살았는데, 하루는 용팔이하고 다른 아이들이 내기를 하였대. 귀신이 나온다는 산소를 돌아오는 달음박질 경주였는데 용팔이는 키가 커고 다리도 길은 롱다리라 먼저 달려갔대. 그런데 무서운 생각을 가지고 달리기를 하다가 산소를 돌아 서려는데 그만, 저고리 고름이 풀어진 거야. 용팔이는 그만 저고리 고름을 한쪽 다리로 밟고 뒤를 돌아다보지도 못한 채로 귀신이 옷깃을 잡아당기는 줄로만 알고 "놔라 이눔아, 놔라." 하다가 꼴지를 하였다는 거야."
"까르르…"
아이들은 합창하듯 웃었습니다.
"이 산소가 바로 그 산소다! 엄마야 무서워라!"
나는 큰 소리로 겁을 주면서 달아났습니다. 아이들은 두려움 반 장난 반으로 소리를 치며 나를 따라서 달음박질쳤어요.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종전에 왔던 산소의 모퉁이를 미끄러지듯 돌아 내려와 산을 벗어나 동네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동네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집으로 가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이미 인자하신 전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산을 돌아다니며 허기진 배를 안고 놀다 들어 온 내게 어머니는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네, 이 녀석! 지금 어디서 뭐하다오는 게냐?"
몹시 상기된 모습으로 내게 물으셨습니다.
"왜? 엄마?"
영문을 모르는 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마냥 내게 인자하시기만 하였던 어머니께서 그렇게 화가 나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손목을 움켜쥐고 실개천 돌다리를 건너 응안네 집 대문을 삐걱하고 밀고 안마당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매타작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누무 새끼야!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남의 왜주는 왜 따먹고 도둑놈 소리를 들어? 어디 이눔아, 너 죽고 이 에미 죽자!"
어머니는 거의 절규하시며 나를 두들겨 패며, 휘잡아 흔들고 계셨습니다. 매질이라기보다 차라리 없이 살던 지난날의 한을 푸는 무당의 굿과 같은 몸부림이었습니다. 손으로 마구 때리고, 발로 밟으며, 머리채를 낚아채셨습니다.
나는 그토록 무서운 어머니의 모습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남의 물건의 소중함과 모든 물건에는 소유자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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