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6월15일을 유두라하는데 「동류수두 목욕(東流水頭 沐浴)」이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이 날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으며 하루를 청류(淸流)한다. 즉, 양기를 듬뿍 먹음은 동류(東流)냇가를 찾아가 몸을 담그면 상서롭지 못한 것을 내쫓고 여름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동방(東方)」과 「청(淸)」과 「양기(陽氣)」의 왕성을 믿었던 까닭이다.
선비들은 「유두연(流頭宴)」이란 연회를 열었는데 동료나 친구 죽마고우들이 술과 고기를 마련하여 계곡이나 정자를 찾아가서 풍월(風月)을 읊으며 하루를 즐기는 풍속이다.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 하여 수박·참외 등 첫 과일을 따고 국수와 떡을 만들어 사당에 올렸는데 이는 「추원보은(追遠報恩)」사상에서 오는 효성과 성실한 마음씨의 표현으로 지금도 효자들은 행하는 고장이 있다.
멥쌀가루를 쪄서 긴 다리같이 만들어 둥근 떡을 만들고 잘게 썰어 구슬같이 만드는데 그것을 꿀물에 넣고 얼음에 채워서 먹고 제사에도 쓰며 「수단(水 )」이라 한다. 또,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처럼 만들어 색으로 물들여 세 개씩 포갠 후, 색실로 꿰어서 허리에 차거나 대문에 걸어두기도 하였는데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잡귀의 출입을 막고 액을 쫓는 풍속의 일종이라 하였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콩이 나 깨에 꿀을 섞은 소를 싸서 찐 것을 「상화병(霜花餠)」이라 하였으며 밀가루를 맷돌질하여 기름에 지지고 나물 소를 싸거나 콩과 깨에 꿀을 섞은 소를 싸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오무려 만든 떡을 「연병(連餠)」이라 하여 유두날 시절음식으로 즐기고 제사에 쓰기도 하였는데(참외와 수박을 곁들여)더위를 쫓는다고 믿었다.
내고향 포천은 예부터 참외와 수박이 달고 맛났으며 그 생산량이 많아서 장날에는 장거리(신읍동)가 참외 장수로 차고 넘쳤으며 한내 개울(한내천) 냇가에는 참외 수박 밭이 수도 없이 줄지어 있던 생각이 난다.
고향 개구쟁이 악동(惡童)들은 유두절을 전후하여 한내 개울 가에서 목욕을 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발가벗은 채 참외 수박 밭을 습격하여 한내 개울 흐르는 물에 띄우고는 온 종일 참외 수박과 함께 목욕을 하던 모습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참외·수박 서리의 대장 노릇을 자처하던 개구쟁이들이 몇몇은 저 세상으로 가고 몇은 노환의 칠십 노객으로 점잖을 빼고 시내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옛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난다.
내 고향 유두절은 참외·수박·앵도가 많아서 더욱 즐거운 명절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송운서당(松雲書堂)」을 비롯한 몇몇 서당에서는 유두절을 맞아 훈장님과 읍내 선비들을 모시고 서당 서생(書生)들이 「청류유두연(淸流 流頭宴)」과 시회를 한내물가 복장굴에서 열던 옛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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