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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살아가는 포천의 예술인-서예가 장포 박재교

홀로 구축한 그러나 누구보다 단단한 예술세계
문지연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7월 13일

 


포천초등학교 뒤편 골목 한 켠에 ꡐ이름 없는 집ꡑ이라는 뜻의 무호당(無號堂)이 고즈넉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곳은 포천에서 한글 판본체의 대가로 손꼽히는 서예가 장포 박재교씨의 서실이다. 명패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풍기는 예향이 서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한 묵향으로 구체화된다. 


 


“인터뷰는 접어두고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던 박재교 씨는 역시나 사람 좋은 미소로 내방객을 반긴다.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기


진해의 육군대학 지휘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장교들의 손에 들려진 붓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절도 있는 자세로 흰 화선지에 검은 빛을 물들이는 모습은 파편처럼 박재교 씨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제대 후 우연히 여동생 집에서 발견한 문방사우로 혼자 6개월 동안 가로긋기만 연습했다. 강의는 물론 교본도 없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때였다. 그저 틈틈이 책방에 가서 서예이론서를 눈동냥하는 것 뿐이었다. 물론 나중에 여유가 생겨 홍익대 미술교육원과 서법학회(현 서법교육원), 경희대 대학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독학을 제대로 했는 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컸을 터이다.


 


88년 포천에서 서실을 차리려는 데 모두가 반대하고 나섰다. 포천만큼 유림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서실을 통해 누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함께 공부한다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다음해 그는 학생들을 선발해 한자교육을 시켰다. 첫 날 1시간으로 예정된 교육을 15분만에 마치고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나니 “오늘 단 한자만 배웠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天자 하나를 통해 파생되는 工, 大, 二 자 등을 함께 습득하는 파자교육을 시킨 것이라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제서야 학부모들도 납득했다. 무조건 외우는 교육은 피했고 무조건 쓰라고만 하지도 않았다.


 


이렇듯 장포 박재교는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춰가는 게 싫다. 뭔가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것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한다.


 


#내 삶의 원천, 열정


 


또 하나 장포 박재교를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누구도 근접하기 힘든 열정이다. 처음 서예를 독학했을 때의 그 열정은 전각을 배우면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서법학회에서 전각을 접한 후 제자를 두지 않기로 유명한 전각계의 이단자 현암 최규일을 만나 어깨 너머로 기법을 익혔고,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유명한 제백석의 글꼴을 혼자 공부했다.


 


또 91년 양로원 ‘모친의 집’을 돕기 위한 자서전 준비를 위해 6개월간 작업실에서 밤을 새워 가며 일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에게 갓 시집 온 신부는 6개월 동안 독수공방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박재교씨는 현재도 포천시 아기이름지어주기 작명위원 활동, 포천시 여성회관, 도서관 등에 출강하며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서예도 변해야


 


장포 박재교는 “우리나라 서예인들이 이젠 현대서예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서예는 화선지, 먹, 붓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유화물감, 돌가루, 캔버스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다. 흑백을 넘어서 빨갛고 노랗고 색이 다양하다. 심미성이 더 강조되고 예술성이 더 요구된다. 회화에서의 추상화 격이다.


 


박 씨는 “단지 서체를 배워서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세계인과 경쟁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대 서예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대인들도 더 이상 틀에 박힌 걸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원한다. 무엇보다 그는 “현대서예가 훨씬 재미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서예를 배울 때 6개월 정도 확실히 기본 필법을 익힌 후 자기 글꼴대로 쓸 수 있도록 하도록 해 창의성을 키워줘야 한다. 더욱이 예술은 외롭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승화될 수 있기에 기존의 서법을 따라하는 전통서예보다는 현대 서예가 더 장려할 만하다.


 


#대작 완성위해


 


장포 박재교는 7년 계획을 세워 지난해부터 대작을 준비중이다. 바로 우리 고유의 천자문인 대동천자문을 우리나라에서 채취한 돌 하나하나에 새겨 작품을 완성한 후 1000m정도의 전각집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리고 서양화를 전공한 부인과 함께 부부전을 개최하고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싶다는 작은 희망도 가슴에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무호당에 들어선 지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긴 인터뷰였지만 진솔한 그의 입담에 지루한 줄 모르고 지나간 시간이었다.


 


뒤 돌아 나오는 길, 이름없는 집 외에 끝 없는 집이라는 의미도 지닌 무호당을 다시 한 번 바라보니 자신만의 세계를 연출하기 위한 예술가의 혼이 오롯이 느껴진다.


문지연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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