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9-29 오후 04:56:2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문화

포천의 명현탐구(95)

이사검(李思儉):고려우왕7년(1381)~세종28년(1446)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6월 04일

본관은 양성(陽城)이고,개성유후(開城留候) 정절공(靖節公) 옥(沃)의 자이다.

1405년(태종5)에 무과에 급제하고 사직(司直)에 임명되었다.


1409년(태종8)에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세자로 명나라에 조하(朝賀)갈 때 수행하여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양녕대군의 행동이 세자로서의 법도에 어긋나자 바로 하도록 충간(忠諫)하니 점점 멀어졌다.


1418년(태종18) 충녕대군(忠寧大君)이 세자로 책봉되자 세자를 보좌하였고 벼슬이 상호군(上護軍)에 이르렀다.


1419년(세종1) 왜구(倭寇)가 황해도 연안에 침입하자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가 되어 부임하였으나 왜구가 식량을 요구하면서 교묘하게 술책을 써 오자 이에 강력히 대응하지 않은 사건으로 응진에 유배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427년(세종9) 진응사(進鷹使)가 되어 매를 가지고 명나라로 가는 도중 요동에 이르렀을 때 매가 죽었다 그러자 죽은 매를 가지고 북경에 이르러 중국 황제에 대한 조선임금의 예를 그르친 것을 사죄하니 명나라 황제 선종(宣宗)은 오히려 이를 기특하게 여겨 장군모(將軍帽)를 내렸다.


1429년(세종11) 좌군첨총제(左軍僉摠制)가 되고, 이어서 경상좌도처치사(慶尙左道處置使)가 되었다.


1437년(세종19) 경상좌도도절제사(慶尙左道都節制使)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사검은 일찍이 왜구에 대한 방비책을 제시하였는데 그 내용으로는


1.왜관(倭館)을 옮길 것


2.진관 설치(鎭管 設置)를 조정할 것


3.병선(兵船)을 증강할 것


4.병기(兵器)에 검열을 철저히 할 것 등이었다.


1444년(세종26)에 공조참판(工曹參判)이 되었고 이어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었다.


1446년(세종28) 병졸(病卒)하니 세종은 조회를 하루 페하고 장례에 예의를 다하도록 하였다.


아들 휘(徽)는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박팽년(朴彭年)등과 함께 단종(端宗) 복위운동을 꾀하다가 순절(殉節)한 단종충신(端宗忠信)이었다.


숙종조(肅宗朝)에 신원(伸寃)되어 공주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사육신과 더불어 영위(靈位)를 봉안하고 춘추로 봉향하고 있다.


이사검은 성격이 너그럽고 후덕하였으며 직무를 수행함에 공정하고 부지런하였다.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묘는 창수면 가양리에 있는데 묘 앞 장군석 머리부분은 다른 무인석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자를 쓴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장군모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6월 04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이름 비밀번호
개일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겨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 포천시 해룡로 130-38 (동교동)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편집인 강신옥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아50080 / 등록일 : 2009년 6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