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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97)

훈도(訓導) 윤흥순(尹興淳) 선생님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5월 13일

「선생은 우리 군에서 명망이 있는 분이셨으니 어려서부터 성예(聲譽)가 있으셨다. 약관(弱冠)에 시대의 흐름이 일변하여 신론(新論)에 물끓듯하였다.
어르신 옥정(玉井)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아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려면 새로운 것이 아니면 불가능 하다”하시고 드디어 학교를 설립할 의논을 정하시고 이름을 옥성의숙(玉成義塾)이라고 하고 약간의 총명한 영준(英俊, 영특하고 준수한-재주가 뛰어난)을 불러모아 가르치셨다.
당시에 이해관(李解觀)선생님도 신야의숙(莘野義塾)을 설립하여 서로 기각지세(서로 합심 협력함)를 이루었고 향리(鄕里)에 이론자(異論者-딴소리 하는 사람)들도 점차 딴소리 안하게 되었다.
그후, 의숙은 폐지되고 공립보통학교가 일어나니 선생께서는 1911년 교원으로 임명받으시고 1921년 제3종교원시험에 합격하시었고 1922년 훈도로 승진 근무하시다가 1929년 병으로 퇴임하시니 19년 재직하셨다.
선생님의 타고나신 성품은 침착하고 정숙하시고 평화롭고 온후(沈靜和厚)하셨으며 지성(至誠)으로 훈육하시어 마치 봄바람이 만물에 불어오는 것 같아서 자연히 사람으로 하여금 감복(感服)하게 하셨다.
본교의 교장 모오리 모토마사씨는 “윤 선생님은 진정한 교육자였다.”고 하였다. 병증(病症)으로 계신지 6년만에 쇠약하여 돌아가시니 51세셨다.
여러 졸업생들이 생각하니 아아 슬프도다 선생님의 업적이 오래되면 없어질 것을 걱정하여 업적을 개략(槪略)하여 돌에 새겨 교문 곁에 세웠으니 오랫동안 영원한 계책(計策)인 것이다.
돌에 새겨 이르기를 “나이는 짧게 할 수 있어도 이름은 깎아 없앨 수 없도다. 아아 선생님의 수(壽)는 영원이 그렇게 셈하리로다”
포천공립보통학교 졸업생 일동이 훈목(薰沐:향료를 옷에 뿌리고 머리를 감아 몸을 깨끗이 함)하고 삼가 기록하다.
1935년 9월○일 세우다.
이는 포천초등학교 교정에 서있는 윤흥순(尹興淳)선생님의 기념비문을 한학자 전 포천향교의 유봉현 전교님이 번역(국역)하신 것을 윤선생님의 후손인 윤영구씨가 제공하여 적은 것이다.
포천 최초교육자(신식교육)로 고등문관 시험(현 행정고시)보다도 어렵다는 훈도(교사)시험에 합격하여 당당히 보통학교 훈도로서 19년간 봉직하신 훌륭한 모범교육자이셨던 윤흥순 선생님이여 말로 많은 포천인들의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국회의원(교통부장관) 윤성순 박사를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윤선생님의 선친께서 세우셨던 옥성의숙은 포천보통학교의 전신이었다. 운동장 곁에서 현관 앞으로 옮겨졌던 윤선생님의 비석은 다시 운동장 구석으로 옮겨져 개교기념탑 뒤에서 숨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 저며지는 아픔을 느낀다.
여명기의 진정한 교육자의 기념비가 이토록 천대받아도 된단 말인가? 동창회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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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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