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칭하여 사람들은 들로 바다로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데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잊고 지내는 것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연극을 비롯한 많은 공연예술과 몸으로 하는 모든 예술적 행위는 제일 먼저 신체적인 자격요건과 정하여진 배역에 적합한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극에서는 여러 유형의 연기자와 스탭이 필요하며 그 종합적인 상황의 변화를 조율하여 조화의 극치에 이르러야 비로소 감동으로의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신체적 정신적인 능력을 마치 본인 스스로 만든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의 선천적인 자질은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며 자랑이기에 현재의 나를 되돌아 보면서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않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식적으로 드러난 겉모습만을 강조하며 마음과 행동에 스며있는 속사정을 알지 못하여 서로를 속고 속이는 누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도 모르게 거짓된 삶들이 자칫 올바른 생활인양 가치관의 혼돈을 범하거나 후배나 자식에게 내리기만 하는 일방적이고 잘못된 기형적인 사랑만이 보여지고 그것이 정말 잘하는 사랑으로 착각될 수 있게 되어있는 현재의 사회적 구조는 자칫 도덕적 공황을 부를 수도 있는 위험한 시기가 도래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들이 현실행위 속에서 효에 대한 생각과 실천이 미흡하고 때로는 자식으로 부모로 진실된 도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어느 가을에 하늘을 보듯이 마음을 비우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가장 백안시하고 흉칙하게 여기며 그 울음소리가 불길한 징조로 알려져 있는 까마귀에 대해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우리의 고대 문헌에는 까마귀라는 새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곳에 등장하는데 이 까마귀는 예언능력이 있고 인간이 해야할 바를 올바로 인도해주는 신비한 새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 지혜와 성스러움 신화의 존재로 추앙하는 경우도 있어 극단적인 양면의 특징이 있는 새이다. 그러나 까마귀에게는 다른 새에서 볼 수 없는 한가지 특성이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의사 이시진의 저서 ‘본초강목’ 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까마귀는 새끼가 어릴 때는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세월이 흘러 어미가 먹이 사냥을 못하게 되면 새끼가 어미를 먹여 살리는 습성이 있다.’ 로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여기서 파생된 말이 반포(反哺)이다. 되돌린 반, 먹을 포 까마귀는 어미를 되먹인다는 뜻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반포지효(反哺之孝) 하면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돌이켜 보면 그 업신여기는 새 까마귀보다 더 나은 효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자신 있는 답변이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연로 하셔서 사리 분별이 어려운 부모님을 여행 가자고 모시고 나와 외진 곳에 버리는 행위,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천인 공노할 인간성 상실의 일들이 자주 발생되고 있다. 사람이 미물인 까마귀 보다 못하다면 이미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의 기본적인 도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모진 고생으로 자식을 기르시고 생의 고된 연극을 마무리하시는 부모님은 자식의 봉양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잃은 자식은 다시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본인의 도리를 못하고 지냈다면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꿔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올바른 나를 찾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