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초명은 사안(思安).자는 안세(安世).호는 만모(晩慕)로 유신(維新)의 자이다. 1728년(영조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1738년(영조14)에는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이때부터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과 사헌부 지평 자리를 왕래하길 13년이나 되었다. 1751년(영조27)4월 문학(文學)이 되고 이어서 사간원 사간(司諫院 司諫)으로 승진하였다. 1752년(영조28)동지사은사(冬至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서 세자 시강원 보덕(世子 侍講院 輔德)이 되었다가 그후 1755년(영조31) 승정원 승지(承政院 承旨)가 되었다. 이후 대사간(大司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1766년(영조42) 한성우윤(漢城右尹)을 역임하였다. 장수하여 기로소(耆老所-조선조 때 노신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다. 기로소에 들려면 정2품 이상의 실적을 지낸 사람으로서 나이가 70세이상이어야 했으며 임금도 늙으면 여기에 참가하여 이름을 올렸다. 이러므로 기로소는 임금과 신하가 동참하는 것이라 하여 관청의 서열도 으뜸으로 쳤다. 조정에서는 계절에 따라 기로연을 베풀었다. 따라서 기로소에 드는 것은 최고의 영예로 여겼다. 기로소에 들려면 반드시 문과출신 문관이어야 하며 무관이나 음관은 들어갈 수 없었다. )에 들었다. 정기안은 유학은 물론 불교(佛敎),도교(道敎),천문(天文),의술(醫術),음률(音律)에 까지 정통하였다. 문장(文章)에도 능하였고 산수화(山水畵)에도 일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시호(諡號)는 효헌(孝憲)이다. 아들은 만석(晩錫)으로 우의정을 역임한 명상(名相)이었다. 자귀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만모유적(晩慕遺滴)이 있고,묘는 가산면 가산리에 41번지에 있으며 포천시 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 앞에는 2기의 묘비와 상석, 향로석,망주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는 정경부인 진주유씨와 안산김씨를 합장해는데 봉분 하단에는 낮은 호석을 둘렀으며 그 높이는 1.8m,둘레도 1.8m이다. 중앙에 위치한 옥개를 갖춘 대리석 묘비는 1831년(순조31) 아들 정만석이 세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