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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96)

봉수지(烽燧址)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5월 10일




「할미산 봉수지」(관인면 냉정1리)
「적골산 봉수지」(영북면 자일리)
「미로곡 봉수지」(영북면 야미리)
「독산 봉수지」(신북면 기지리)
「넙재 봉수지」(내촌면 진목리)
위 5개 봉수는 횃불(烽;봉)과 연기(燧;수)로써 국경지;방의 적의 동태나 급변하는 민정상황을 중앙의 상급기관에 신속히 알리기 위한 전보통신 기능을 목적으로 하여 설치된 전근대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통신제도의 하나이다.(포천시 관내 소재 봉수임)
우리나라에는 “49년(의종3년:고려초)에 확실한 봉수제의 출발이 있었으나, 조선시대 세종대에 이르러서야 관계규정을 강화하여 봉수선로를 일제히 확정하는 개혁을 단행화고 적의 동태변화에 따른 거화법(擧火法;1~5거 불을 켜서 통신을 하는 방법의 다섯가지)을 정하여 현대적 통신체제로 전환하게 되는 1894년(고종31년) 전까지 이제도가 원칙적으로 준수되어 봉수를 운영하였다.
포천시(군)내에는 조선시대 서울 남산(목멱산) 중앙봉수로 집결되었던 전국5개 선로의 직봉로선(直烽路線)중 함경북도 경흥(慶興) 서수라(西水羅)의 우봉(右奉) 봉수대와 연결되었던 내지봉수(內地烽燧) 가운데 전술한바 같이 남북으로 5개소가 운영되었다.
할미산은 철원읍 사요리 소리산 봉수 신호를 받아 적골산으로, 미로곡으로, 미로곡은 다시 독산으로 독산은 넙재로 연결되는 바 넘재는 남양주시 대이산 대이산은 아차찬을 거쳐 남산(목멱산)으로 경봉수(京烽燧)로 전달되었다 한다
그오히 전설상의 봉수지가 5개소 있는데 반월산 봉수(구읍리) 성동리 봉수(성동산성) 금화동 봉수(봉화뚝) 운악산 봉수(화현리 운악정상) 등이 있다. 역사상 어느 시대인가 봉수지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봉수대 근무 봉군(烽軍)은 원군(元軍) 25명 보군(保軍) 75명이라는 정원이 1759년(영조3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영평현의 지리지에 언급되여 있는바 통신군사(통신정보직 관군)가 봉수대를 관리 운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 포천군 출신 모범 체신공무원이나 정보통신부 공직자들이 고향의 정보통신 업무를 위해 멸사 봉공하였으며, 명예로운 정년 퇴직을 한 정보통신 공무원들이 다수 있었다는 사실도 봉수지를 5개소나 갖추고 있었던 통신기능의 요충지여서가 아니었나? 생각되어진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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