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는 반월산(청성산)성을 제외하고는 세 개의 산성이 있다. 영중면 성동리 산727번지 「태봉산 성지(泰封山城址)→향토유적제29호」와 관인면 중1리 산 251-1→향토유적 제36호인 보가산성(保架山城) 그리고, 소흘읍 고모리 산 64번지 노고산에 있는 향토유적 제43호인 고모리성지(古毛里城址)등이다. 태봉산 성지는 삼국시대에 축성되어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순조의 세자 익종의 태(胎)를 안치하여 태봉산 성지라 이름하였는데 높이 2.5M,둘레 1-2KM 이다. 보가산성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고대산성으로 신라때 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연적인 방어선인 한탄강이 흐르고 있다. 산성은 70M 가량 남아 있다. 고모루산성은 고구려의 남진과정에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고모루성은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고모루(古牟婁城)성으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고모루성은 396년(광개토대왕 6년) 광개토 대왕이 백제를 공략하여 빼앗은 58성 7백여 마을중에 포함되어 있다. 고모루성의 고모루는 크다는 의미와 마을이란 의미로 이해되지만 고산(高山)대산(大山)으로 「모루」는 「마루」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모루라는 땅이름은 다른 곳에도 있다. 포천읍의 「원모루」나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古毛里)」도 있으니 말이다. 그저 추정일뿐이다. 청성산성(반월성)의 다년간 연구로 포천의 고구려때 이름인 「마홀(馬忽)」이란 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성동산성이나 보가선성 고모루산성도 꾸준한 연구와 고증이 필요한 시점이다. 옛문헌인 「동국여지승람」이나 「조선보물 고적조사자료(일제시 간행)」와 「광개토대왕비문」「중원고구려비」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산성을 해체 발굴하고 재축성하여 실체를 규명하거나 고증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이다. 박경식교수의 연구견해는 세 개의 성 모두가 포천 방면으로 진출하여고 시도했던 고구려를 견제하였던 신라의 성이었다는 견해도 주목할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대진대학교 사학과 서병국교수가 고모루성에 관한 논문을 2002년도 모악실학회(母岳實學會)에서 실학사상 연구 제22집에 「호태왕릉비소재 영락연호 사용광정(好太王陵碑所載 永樂年號 使用匡正)」이란 제목으로 발표하였는데 고모루성이 고모리산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견해를 발표하였다고 한다. 삼국시대의 삼국의 요새로 포천을 차지하려는 수비성이 세곳이 있다는 점은 함국사 연구에 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포천 출신 사학자들의 향토 연구의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