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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박동규]기축년 소해 소에 대한 이야기①

정월 첫 축일(丑日) 소의 날로 밥과 나물 잘 먹여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9년 01월 20일


박동규(영북노인대학 학장)


기축년 소의 해를 맞아 평생을 교직에 몸담아온 전 영북종합고등학교 교장이며 현 영북노인대학 박동규 학장이 말하는 소에 관한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하여 독자들의 소의 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편집자주)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무자년(戊子年)의 묵은해를 보내고,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으로 소처럼 일해야 할 2009년 기축년(己丑年) 소해를 맞았다.


소는 12지지(地支) 가운데 두 번째 동물로 축(丑)이요, 일반적으로 소의 총칭은 우(牛), 암소는 빈(牝), 수소는 모(牡), 일본식으로는 수소를 웅우(雄牛), 암소를 자우(雌牛)로 표기했다.


우리나라 전통적(傳統的)으로 내려오는 재래 수소를 황소라 부르고, 토속적(土俗的)으로 기르던 우리 소를 한우(韓牛)로 부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소는 예로부터 천지(天地)·종묘(宗廟)·고사(告祀)를 지낼 때 제물(祭物)로써 제상에 먼저 올랐다. 이런 연유로 희생(犧牲)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희생은 남을 위해서 목숨이나 혹은 권리 등을 버리거나 빼앗기 일을 말함인데 두 글자의 의미부(意味部)는 우(牛)자 부수(部首)로 소를 뜻하며, 음운부(音韻部)인 희(羲)·생(生)의 한자로 쉽게 자해(字解)가 된다.  


소는 척색동물문(脊索動物門)·포유강(哺乳綱)에 속한 초식동물(草食動物)로 가축화(家畜化)되었다. 소는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한 개의 위를 가졌으며 반추동물(反芻動物)로 소화(消化)가 잘 되지 않는 먹이를 반복하여 게워내고, 이를 새김질하여 다시 삼켜 소화시킨다.


소는 산업화(産業化) 이전에는 주로 짐을 나르고 달구지와 쟁기를 끄는데 이용되었고, 쇠고기와 가죽 우유 등을 얻기 위해 길렀다. 그래서 속담에 ‘소는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와 관련된 민속이 많은데 이는 우리가 주로 농경문화(農耕文化)가 중심이었으므로 농사의 주역(主役)인 소가 여러 풍속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정월 첫 축일(丑日)은 소의 날이라 하여 소를 쉬게 하고 사람과 같이 밥과 나물을 잘 먹였다.


소를 한 가족처럼 소에 대한 배려가 각별(恪別)했고, 겨울에는 짚으로 짠 덕석을 즉 우의(牛衣)를 해 입혀주고, 습하지 않게 봄이면 외양간을 먼저 치웠고,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아니 했으며, 솔로 자식을 빗겨주듯 빗겨주었다. 길을 떠날 때는 짚으로 짠 짚신을 삼아서 신게 하여 발굽이 닳지 않도록 배려해 주기까지 했었다.


겨울밤이면 마구간(馬廐間)을 자주 들여다보고 건강을 확인하고, 이른 새벽에 소죽을 끓여 사람보다 먼저 먹게 했으며 소죽에 콩이나 비지 따위를 주어 살찌게 했다. 소는 성질이 우직(愚直)하고 순박(淳朴)하여 성급(性急)하지 않는 소의 천성(天性)은 은근과 끈기, 여유(餘裕)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氣質)과 잘 융화(融化)되어 선조들로부터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했다. 


소는 온순하며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잘 순종(順從)하며 말은 없지만 소에게는 12가지 덕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의 습성(習性)이 한국인의 정서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흔히들 소띠 사람들은 소의 근면성(勤勉性)을 닮아서 근면하기가 다른 띠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만 고집은 대단하여 ‘황소고집’이라고 했다.


심한 표현으로 ‘소죽은 귀신같다’고 까지 혹평(酷評)하기도 한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해내는 것이 소띠 사람들이다’ 또한 결단력이 있어 ‘쇠뿔은 단김에 빼다’처럼 의지가 강해 강자에게는 무릎을 꿇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예상외로 인정(人情)과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예나 이제나 빈부(貧富)의 차가 있어 부농(富農)이 빈농(貧農)에게 송아지를 주어 먹이게 한 후, 키워 낳은 첫 송아지는 기른 사람이 갖고, 어미 소는 되돌려 받는 즉 새끼를 친 뒤 주인과 나누어 갖는 배내가 농가의 풍속이 되었고, 그 당시는 웬만한 부농 집에서 빈농 집에서 배내기 소를 주어 기르게 되었는데 소작농(小作農)의 형태로 반양(半養)이라고 했다.


농가에서 70년대 이전에는 급히 많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키우던 소를 우시장(牛市場)에 몰고 가서 팔아서 현금화했었고, 자식들의 대학 학비로 소 팔아 등록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에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 아닌 우골탑(牛骨塔)으로 폄하(貶下)기기도 했으나, 이제 산업사회에서 농경문화가 점차 쇠퇴(衰退)해져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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