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왕방산에 찾아온 가을

왕방산에 찾아온 가을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산을 좋아하면 인자하고 바다를 좋아하면 지혜롭다는데...”
가끔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산을 좋아하면 인자하다는 말을 오늘 친구와 함께 엄마들을 따라 왕방산을 오르며 실감했다.

 

개학을 하고 처음 휴일을 맞아 우리는 학교 뒷산인 왕방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셨다. 사람들도 모두 웃는 얼굴로“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서 엄마께“와, 엄마 포천에 아는 사람 엄청 많으시네요.”했더니“아는 사람 아니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하셨다.

 

‘산의 품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도 모두 반가운가?’
산 속에서는 곳곳에서 다람쥐들이랑 청솔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돌탑을 지나 조금 걷다보니 우럭고개 중간 약수터라고 표시 된 표지판이 보였다. 목이 마른 데 잘 됐다며 약수터로 향해 가는데“투두둑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밤이 떨어지는 소리라고 했다. 왕방산에 벌써 가을이 찾아 왔던 것이다.

 

‘밤나무가 어느 것이지?’하고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들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서 자랐던 것인지, 키가 커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어서 어떤 나무가 밤나무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때 알밤이 떨어진 것을 알고, 양식을 모아두려는 것인지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오다가 나무 아래 서 있는 나를 보더니 다시 쏜살같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아무도 몰래 가을이 오고 있는데 다람쥐는 벌써 겨울을 준비하는 듯 했다. 나무 아래에는 방금 떨어진 알밤 두 톨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네 톨이 있어야 하나씩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보물찾기를 하듯 알밤을 찾아 다녔다.

 

우리 보다 앞서 그곳을 찾아와 밤을 주우시던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손 좀 벌려 봐.”하시더니 여

기저기 주머니에서 알밤을 꺼내 우리들에게 한 웅큼씩 나누어 주셨다. 너무너무 감사했다.

 

약수터에 앉아 알밤을 까먹으며“엄마, 산이 인자한 거예요. 저 할아버지가 인자하신 거예요?” 하고 여쭈었더니“음, 그건...  산에 있는 사람이 인자한 거지.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지도 않고 불평불만 하지도 않고 생명을 포근히 안아주니까 까칠한 사람도 산에 오면 산을 닮아 마음이 편안해져서 인자해지는 것이란 생각 들지 않아?”하셨다.

 

약수 물을 마신 후 산을 내려오려는데 어디선지 또“투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찾아서 주워 갈까?’하다가 우리 뒤에 산에 오를 사람을 생각하며 남겨두기로 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우리 옆을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하시는 말씀이, 올해는 왕방산에 도토리가 풍년이라고 한다. 겨울에 청솔모가 먹을 것이 없으면 다람쥐를 잡아먹기도 한다고 하던데...

 

왕방산 가득 떨어진 도토리 열매를 보며, 내가 알밤을 조금 주워 먹어도 다람쥐랑 청솔모의 겨울 양식은 걱정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