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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창조와 파괴, 성(聖)과 속(俗)의 양면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앞서 언급했듯이, 물의 생태학은 생명 자체 속에 수반되는 역설의 논리를 함의하고 있다. 물속에는 약함(無)과 강함(有)의 상반 논리가 함께 들어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다음처럼 말한다: “천하에서 물보다 더 유익한 것이 없다.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꺾는 데는 물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다. 아무것도 물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제78장) 물의 생태학은 인간적인 특징으로 노자의 이상적 인간인 성인에 비유되고 있다. 이는 물의 생태학에 도(道)의 질서가 작용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물이 어떤 구체적인 물질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도(道) 자체에 가깝다는 것이다. 성인이 물과 같이 부드럽고 다투지 않고 무리 없이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에서 물은 도(道)의 형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노자는 물을 부드럽고 약한 것의 상징이며, 이것은 바로 생명의 근원인 무(無)의 상징이라고 여기고 있다. 물은 무(無)에서 유(有)가 나오고, 반대로 유(有)에서 무(無)로 이르는 역설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무(無)와 유(有)는 한 근원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위적인 체계인 언어에 따라 이름만이 다른 것이다. 무(無)란 인간의 구별과 차별을 뛰어 넘은 그 분리 이전의 상태이며 모든 유(有)의 근원이이자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인 하나이다. 유(有)와 무(無)는 상대적으로 나타나고, 어려움과 쉬움도 상대적으로 이루어지고, 길고 짧은 것도 상대적으로 형성되고, 높고 낮음도 생래적으로 대비되고, 상대적으로 어울리기 마련이다. 인간 개개인이 무리하게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은 모두 물의 생태학적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다. 노자의『도덕경』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물은 만물에게 좋게 베풀고 이롭게 해주지만, 자신을 위해 고명을 다투지 않고,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천한 곳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물의 특성은 도(道)에 가깝다. 물의 특성을 닮은 성인은 몸을 선천의 땅, 즉 ‘비천한 곳’에 두고, 마음을 최선의 곳, 즉 ‘허정(虛靜)’에 두고, 최선의 인을 베풀고, 최선의 실천적인 말을 하고, 최선의 다스림으로 바로잡고, 최선의 효능으로 일하며, 언제나 최선의 때를 따라 움직인다. 오직 ‘물과 성인은’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느니라.” (제8장) 노자의 『도덕경』에 따르면, 도(道)와 덕(德)은 삼라만상의 근본원리로 통한다. 도(道)가 만물을 생성하고, 덕(德)은 만물을 양육한다는 것이다. 만물이 음양의 기(氣)로 형성되고, 그것을 통해 자연의 힘이 생성되고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도(道)를 존중하고 덕(德)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도(道)를 존중하고 덕(德)을 귀중하게 여김은 남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스스로 그렇게 되어 가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도(道)는 만물을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는 가운데, 오묘한 덕(德)이 쌓이게 된다. 이는 물이 지닌 신비의 이치와 일치한다. 물의 생태학은 물의 순환과정과 깊은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물의 생태학 속에는 유기물과 무기물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이 숨쉬고 있다. 물의 순환구조는 만물을 구분하거나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바라보고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무리하게 만들지 않고 또 그것을 강요하거나 소유하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물은 구태여 어떤 일을 인위적으로 행하지 않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일도 없다. 또한, 물의 생태학은 풍수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풍수는 땅의 생기를 받고 흩어진 자연생명의 기(氣)를 모으는 방법이다. 풍수에 의하면 산천은 바로 인간의 삶, 인간의 생명활동, 특히 인간의 신령과 깊이 관계된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계와 직결되어 있다. 풍수의 목적은 자연 생명활동의 운을 바꾸기 위하여 우주적 흐름인 기에 입각하여 환경을 변화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이다. 풍수에 의하면 땅은 우선 단순한 흙, 돌, 물의 결합체가 아닌 지기(地氣)라는 생명소가 있음으로 해서 살아 있는 것과 같다. 산은 고요하고 물은 움직이기에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을 통한다. 그러나 산에도 음양이 있고 물에도 음양이 있다. 산은 사람의 신체와 같고 물은 사람의 혈맥의 이치와 같다. 혈맥의 도수가 순조로워야 건강하고 그렇지 않으면 병든다. 이 음양이 융합하면 새 기운이 생긴다. 도(道)는 인간과 사회를 포함하여 자연의 운행을 주도하는 하나의 커다란 원리이며 모든 존재의 갈등, 모순, 분별이 궁극적으로 해결되는 기본적인 통합의 원리이다. 도(道)는 자연을 인간중심으로 변화시켜 재구성한 문화의 반영물인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자의적인 기호치계로는 정의할 수 없다. 도(道)는 적어도 인간적인 의식, 무의식, 심리, 인식을 초월하여 모든 속성의 생명체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조화의 심리이다. 따라서, 인간 개개인은 물의 생태학을 통해 자연적 본성인 도(道)에 복귀하고자 하는 무위(無爲)와 무욕(無慾)의 이치를 배운다. 물은 인간에게 치열한 경쟁의식에서 파생되는 지나친 억지와 교활한 꾸밈을 타고 넘어 인위가 없는 자연의 도(道)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물의 생태학에는 오히려 삶을 쇄신하고 적극적으로 개혁하려는 실천윤리학이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