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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화해와 진실을 위한 과거사의 진상규명

김창종(수필가, 신북면 깊이울 출생, 월간 교육평론 편집·논설위원, 본지 자문위원회 고문)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3월 20일

지난해는 돼지의 해라고들 야단법석을 떨더니만 국민을 부자로 만들고 잘 살게 하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자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소리 높이 외친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화 이후 , 최다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잃어버린 10년이니, 좌파정권이니 하면서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를 다시 태어나서는 안될 정부인 양, 매도하지만 사실은 IMF 국가위기에서 먼저 IMF위기를 겪었던 영국과 프랑스, 일본 등의 선진국보다도 슬기롭게 지혜를 모아 단 시일 내에 극복한 정권이었으며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의 굶주린 북녘동포들이 떼를 지어 물밀 듯이 남쪽 대한민국을 행해 넘어와 구제불능의 혼란의 도가니로 한반도를 몰고 갈 위기에서 한민족을 구한 10년이었으며 북·미 직접 핵 혐상이나 북·미 외교 관계 상황에서 방관시되는 제3자적(외교적) 위치에서 대한민국의 주체적 외교 및 대북 정상외교로 핵문제 해결의 선도적 역할을 했던 일이나 남·북 화해를 위한 한민족 서로 돕기 운동 등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과거사 진상규명중 친일파 후손들의 상속 유산 및 토지 환수, 억울한 개발 독재 시대의 의문사 진상 규명, 친일행위자 친일파 조사 사료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을 통한 억울한 서민의 문제 해결 등은 지난 10년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특단의 노력 없이는 이룩되기 어려운 큰 공적이었다.
얼마 전, 진실과 화해를 위한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숭실대 명예교수 안병욱 철학박사) 조사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던 필자의 경험은 내 고향 포천의 여러 계층의 인사들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권고하는 이 글을 쓰게 하였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포천시청의 모 여직원의 안내로 내게 전화를 하였다. 다름이 아닌 6.25당시 북한정권의 남침시 포천에서 학살당한 일동면 거주 고 박 모씨의 따님이 부친의 6.25당시 북한 정권의 추종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실을 규명해 달라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진실과 화해를 위해 명백히 진상을 규명하여야하겠는데 6.25당시 상황을 증언하여 사실 규명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전화였다.
간단히 말하면 일동면사무소 근무 6.25전 공무원이었던 박 모씨의 6.25당시 억울한 죽음을 명예롭게 회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필자를 만나고자 하는 조사관의 태도는 진지하고 진실되고 노력하는 공직자의 자세였으나 필자 김창종은 6.25당시 중학교 2학년생이었으며         6.25전쟁이 끝난 해(1950~1953)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으니 생생한 증언자로 사실 규명을 위해 조사관 앞에 서서 조서를 쓰기에는 너무  어린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다만 중·고교 시절의 겪은 사실을 포천문화, 국제 PEN, 국제승공연합지, 자유문학(순수문학지)(문예지), 생활문학(문예지)지 등에 발표한 작가적  집필행위에 불과한데 아무 리 문학적 향기가 높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하더라도 실록(實錄)이나 조사보고서(調査報告書)적 성격의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포천시청 공무원은 정부의 공식기관(장관급 위원장)의 조사관을 포천에서 거주하지도 않고 출향(出鄕)상경(上京)해서 살고 있는 필자에게 다만 6.25를 소재로 하여 수필체의 일기문을 집필하여 문학지에 발표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가적 대담 밖에는 진술할 수 없는 처지임을 알았을터인데 필자를 대상으로 6.25 당시 포천의 남하한 북한 김일성 집단의 동족학살의 만행을 증언토록 안내하였다는 사실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이 가지 않아 몇 번 거절하다가 담당 조사관의 간곡하고도 애절한 증언 요청에 하는 수 없이 3회의 전화 증언과 필자의 6.25를 소재로 한 수필체의 일기문 중 문학전문지 공무원 문학 2007년 봄,여름, 가을, 겨울호에 게재된 것을 복사 증정하는 선에서 조사를 마감하였다.
차제에 우리는 포천의 일제강점기, 해방 후 미군정 하의  3년사(해방 전후사), 6.25북한 정권 치하에서의 포천 등을 면밀히 실록(實錄)으로 조사하여 끊어졌던 암흑기와 혼란기의 역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곡히 권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포천시청이나 포천문화원이 중심이 되어 정치(행정), 경제, 교육, 사회, 서민생활, 자연 생태계의 변화 및 지리 등을 조사하여 중단되었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연려실기술(姸麗室記述)(조선시대의 중요 사건 기록-국민·국가의 국란극복의 기록포함) 등이 있어 조선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게 하였는데 연려집도 이에 속하며 유성룡의 징비록,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 많은 기록이 이의 대표적 문헌이기도 하다.(이외 다수)
체계 있는 포천지방의 암흑기와 혼란기의 역사적 기록이 실록, 역사 기록물화(化)가 불가능하다면 정부기록 문서 보관소나 국립 중앙도서관에 보관된 기록 그리고, 국방부 6.25 전쟁사 등을 참고로 포천의 중단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번역하는 일 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증언을 할 수 있는 인사(人士)들이 고인이 되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진상규명의 자료로 남겨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제 치하의 친일파 면장이 일제시 축재하거나 일제로부터 양여 받거나 탈취한 재산으로 부를 누리고 일제시, 헌병 보조원 출신이 농민 대표 기관에서 대표자로 있었으며 일제 경찰 간부가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 고향 포천의 면장 군수를 지냈으나 독립운동가로 옥고를 치르고 옥답 1500평 외 재산 모두를 팔아 만주 대한독립군 군자금으로 헌납한 독립지사외 여러 독립지사 후손들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살아온 우리 포천의 과거사가 그대로 사장(死藏)되기에는 오늘의 과거사 규명이 너무 진실 되지 못하지 않은가? 또 고향 면사무소 직원이나 이장을 했다고 미제국주의자의 앞잡이라고 총살을 당해 임자 없는 썩은 시신으로 들판에 버려지고 사회주의 운동가라고 자처하고 부모를 악질 반동 지주라고 죽인 날벼락을 맞아 죽을 죄인이 지금도 하늘을 이고 살고 있다. 화해의 역사, 진실한 역사를 다시 쓰자는 얘기이지‘친일파다, 빨갱이다, 악질반동이다’하며 새삼스럽게 들추어내어 법의 심판이나 역사 앞에 두 번 재판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 규명이나 기록을 남기자는 주장임을 밝혀두는 바이다.(화해의 일환)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될 눈물과 치욕과 한숨과 피의 역사를 위해서 진실된 기록을 역사로 남기자는 말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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