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태어나 10년 6개월하고 3일 동안 이 세상을 살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한 가지는 양심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숨기고 싶거나 괴로운 것이 있으면 차라리 친구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모두 털어놓고 말 해 버리고 용서를 구하면, 속도 시원하고 체한 것처럼 답답하던 양심도 조금은 시원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서해바다에 반성문을 보내서 내 양심을 조금 시원하게 해 주려고 한다.
2007년12월7일,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난 후 기름띠를 걷어 내기 위하여 나와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다녀와야만 했었다. 왜냐하면 서해안에 있는 태안의 마검포 바다는 해년마다 우리 가족의 여름 피서지로서 내가 태어난 후로 늘 1년에 3~4일은 서해바다에서 더위를 피했다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의 외할머니 댁은 충청남도 홍성에 있다. 외삼촌들과 이모들은 여름휴가를 얻으면 모두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외가로 모인다. 그리고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각자의 자동차 다섯 대에 모든 가족들이 나누어 타고 집에서 자동차로 40~50분쯤 걸리는 서해 바다로 향했었다.
태안의 안면도 근처에 있는 마검포 해수욕장은 우리 외가의 모든 가족들과 나의 추억이 살아있는 곳이다.
해마다 가는 민박집에 짐들을 풀어놓고, 바다에 물이 많이 들어왔을 때는 수영복을 갈아입고 튜브와 보트를 끌고 바다로 들어가 사촌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다. 그러다가 물이 점점 바다 저 멀리로 도망쳐 가면 우린 호미랑 삽, 그리고 맛소금이랑 양동이를 챙겨서 갯벌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조개도 잡고 골뱅이도 잡았다. 아빠께서 삽으로 살짝 흙을 파면 나타나는 동그란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맛소금을 넣으면 기다란 나무토막 같은 것이 쏙 나온다. 바로 맛 이라고 하는 조개인데, 소금을 넣으면 바닷물이 들어 온 줄 알고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민박집 마루에 앉아 우리가 잡아왔던 조개들을 구워 먹던 추억, 그리고 물놀이와 조개잡이가 지겨워 지면 우리는 손에 장갑을 끼고 바닷가에 있는 소나무 밭을 돌아서 돌밭이 있는 곳으로 간다. 작은 돌들을 하나하나 들어 낼 때마다 놀라서 쏜살같이 도망가는 똘장게들을 장갑 낀 손으로 확 덮쳐서 잡던 그 손의 느낌, 맑은 물 속에서 그리고 갯벌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던 작은 다슬기들......
지난여름 피서를 다녀 올 때도 두고 오는 바다가 너무 아쉬워서 자꾸만 돌아보던 바다였는데, 어느 날 그 바다가 기름으로 덮였다는 믿지 못할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TV를 통하여 보여 지는 서해바다의 병든 모습에 발만 동동 굴렀었다.
"방학하면 나도 바다 간호하러 가야지."결심하며 어린이 신문에, 방학하면 태안 바다에 자원 봉사하러 갈 거라는 다짐을 적은 기사를 싣기도 했었다.
겨울방학이 되자, 나는 당장 돌을 헤집으며 게를 잡던 태안의 그 바닷가로 달려가서 기름을 닦아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중풍에 걸려 몸이 불편하신 외할머니가 늘 마음에 걸리는 나의 부모님께서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할머니를 따뜻하게 모셔야지 홍성에서 춥게 계시다가 또 쓰러지면 큰일난다고 하시며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먼 태안까지 혼자서 가겠다고 우길 수도 없고, 편찮으신 할머니를 두고 우리끼리 가서 봉사활동 하다가 올 수도 없어서 하루하루 TV앞에서 속만 태우는 나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ꡒ"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할아버지도 홍성 노인회 어른들과 함께 태안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고, 작은 외삼촌도 바다에 가서 일주일동안이나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더라." 라고 말씀하셨다.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나고 50일 되는 날 드디어 서해바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설을 앞두고 할머니께서 명절 때문에 홍성에 가셔야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른 때는 할머니랑 헤어지는 것이 섭섭해서 눈물이 나왔을 텐데, 할머니 때문에 내가 서해바다에 가 볼 수 있게 되니 기쁘기만 했다. 홍성에 가다가 우리는 먼저, 여름마다 찾아가던 마검포에 갔다. 할아버지께서 기름 유출 된 곳은 마검포가 아니고 거기서 20~30분정도 더 가야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바다란 칸막이가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니 틀림없이 내 추억의 바다 마검포도 기름옷을 입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부끄럽게도 장갑 한 켤레, 걸레 하나 가져가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에 엄마께서"할머니가 차 안에서 오래 앉아 계시지 못하니까 우리는 오늘 봉사활동 못한다. 네 소원이라니까 그냥 바다가 어떤가 보고만 오는 거야."하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검포에 도착하여 바다로 뛰어 가 보니, 지난여름과 똑같이 맑았다. 혹시, 하며 할아버지랑 모래를 파 보았지만 모래 속에도 기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돌밭으로 가서 돌들을 보니 기름 한 방울 묻어있지 않은 깨끗한 돌이었다. 돌을 들어보니 숨어있던 똘장게들이 허겁지겁 도망쳤다. 돌 틈에 고여 있던 물속에서는 작은 아기 다슬기들이, 이번 여름에 또 만날 나를 위해 열심히 몸을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너무 기쁘고 놀랍고 신기해서 홍성에 살고 계시는 작은 외삼촌께 전화를 걸었다.
"외삼촌, 저 태안 마검포인데요. 여기 기름이 하나도 없구요, 똘장게랑 다슬기도 건강하게 살아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외삼촌께서는"그래 다행이도 그쪽까지는 기름띠가 번지지 않았어." 하셨다.
기름 유출되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던 그 바다는 가 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홍성의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태안에서 홍성까지 가는 동안 여기저기에 "자원 봉사자 여러분,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쓰여 있는 프렌카드들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그동안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의 바다에서 이 추운 겨울에 기름땀을 흘리며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그 분들의 수고 덕분에 우리의 서해바다가 건강을 되찾아 가고, 또 내 추억이 살아 숨 쉬는 마검포가 상처 하나 없이 건강하니 정말 감사하다.
"서해바다야, 너 사고 당했을 때 간호하러 못가서 미안 해."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갖다 주시며 끓여 먹으라고 하시던 민박집 아저씨, 사촌들과 내가 하루 종일 잡은 조개보다 방금 나가서 바구니 가득 더 많은 조개를 잡아다가 우리에게 주시며 국 끓여 먹으라고 하시던 민박집 아줌마, 여름에 만나요. 서해바다야, 너 아플 때 간호 해 주러 못 갔어도 나랑 함께 놀아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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