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 선비들은"논리(論理)"와"명분(名分)"을 중시했다. 정쟁의 핵심에는 늘 논리와 명분 싸움이 있었다. 논리와 명분은 넓은 지지기반(支持基盤)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 힘의 중심이었다.
명분이란 당위성(當爲性)을 말하는 것이다. 마땅히 "그러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인정(認定)해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다. 계산(計算)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계산을 하면 이미 그것은 명분이 아니다. 계산을 하는 순간 그것은 실리(實利)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명분과 실리가 항상 다툼하게 되는 것이다.
명분은 이상주의(理想主義)를 지향하고 실리는 현실주의(現實主義)를 지향한다. 현실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權力)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의리(義理)고 명분(名分)이고 원칙(原則)이고 하는 것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버리거나 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기적(利己的) 욕심으로 움직이는 인간은 철저히 돈으로 다루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상주의는 그렇지 않다.
이상주의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價値)와 이상(理想)을 먼저 분명히 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合當)한 것만 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뛰어넘어 인간에겐 권력이나 돈 이전에 그들이 추구하는"가치"가 있고 그에 따른 "삶의 원칙(原則)"이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이를 축으로 해 그 사이에 생기는 다양(多樣)한 스펙트럼(spectrum) 가운데 어떤 지점을 선택(選擇)해 행동한다. 이처럼 나라의 운영과 인간의 행동에는 먼저 추구하는"가치"가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의 생각하고 또한 그들이 지향하는 바다.
명분이 원론(原論)이라면 논리는 각론(各論)이다. 명분이 힘을 발휘하려면 논리가 제대로 서야 한다. 논리가 제대로 서지 못하면 명분은 그야말로 명분으로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명분이 키워드(key word)라면 논리는 그 키워드를 받쳐주는 술어요, 내용이다. 키워드는 하나의 낱말이요, 단어(單語)다. 그 낱말과 단어의 내용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논리이다. 논리는 그야말로 논리정연(整然)해야 한다. 논리가 정연하다는 것은 패러다임(paradigm)과 씬탐(syntagm)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이고 커절이티(causality)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이다. 패러다임과 씬탐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은 주어(主語)와 술어(述語)의 관계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이고 커절이티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은 코즈앤이훽트(cause & effect) 즉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이다.
"원론"만 무성해선 안 된다."각론"이 잘 뒷받침해 줘야 한다. 원론이 집의 외형이라면 각론은 집의 내부요 장식이다. 외형만 번듯해서는 안 된다. 내부의 장식이 짜임새 있게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실제로"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내부시설과 장식에 있는 것이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부시설과 장식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명분도 마찬가지이다. 제목만 번듯해서는 안 된다. 구호만 번듯해서도 안 된다. 그에 걸 맞는 내용이 있어야 하고 그에 걸 맞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만인(萬人)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름이 바로 서야 명분이 바로 서고 명분이 바로 서야 논리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다." 이름이 바로 선다는 것은 정명(正名)을 말하는 것이다. 이름을 바로 붙이고 그 뜻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름을 잘못 붙이거나 그 풀이를 잘못하면 논리가 바로 설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뜻이 포장 속에 숨어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진의(眞意)를 감추고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가면을 쓰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양두구육의 가면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선조들이 논리와 명분을 왜 그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소용돌이치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리 못지 않게 논리와 명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