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연아, 큰 일 났다. 어젯밤에 편집국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동장군축제 조직위원회에서 포천신문에 며칠 전에 실린 네 글을 보시고, 축제 폐막식에 너를 초대했다고 하시는데, 혹시 지난 번 기사에 네가 섭섭했다는 이야기만 잔뜩 써서 꾸중하시려고 오라는 것 아니니? 가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니 오늘은 엄마가 함께 가야 하겠다."하셨다.
오후 4시에 폐막식을 한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백운계곡 동장군 축제에 도착한 것은 2시였다. 며칠 전 월요일에 왔을 때는 한산하고 조용했는데 오늘은 동장군 축제장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길 양쪽으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곳곳에서 자원봉사 하시는 아저씨들께서, 축제에 온 사람들이 주차하시는 것을 도와주고 계셨다.
차에서 내려서 축제장 입구에 오자마자 지난번에 왔을 때 받지 못했던 동장군 축제 홍보지부터 받아두었다.
그리고 축제 조직위원회 사무실에 가서 초대를 받고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곳에 계시던 자원봉사 아주머니들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자원봉사자들께서는 축제가 열리는 동안 주말마다 오셔서 주차질서나 소방안전 등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동장군 축제 주최하시는 분들께서는 이 마을이 좀 더 잘살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것이겠지만, 자원 봉사자들께서는 서로 돕는 이웃을 만들기 위해 참으로 수고가 많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를 주최하시는 아저씨들께서는 엄마와 나에게 자유 이용권과 식권을 주시며 반겨주셨다. 며칠 전에 축제장에 걸어오느라고 고생했던 것과,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팠었던 기억이 싹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지난번 기사 때문에 내가 꾸중들을까봐 잔뜩 긴장하셨던 우리 엄마 얼굴이 활짝 펴져서 더욱 기뻤다. 엄마의 손을 잡고 전통음식 체험관으로 갔다. 돈이 부족하여 침만 삼켰던 기억에 한풀이 하듯이 추억의 도시락도 먹어보고 오뎅도 먹고 삼겹살도 구워먹었다. 전통음식 체험관 옆에는 지난번에는 보지 못했던 커다란 달집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소원을 적는 종이가 있어서 두 장의 소원종이에 소원을 빌어서 달집에 걸어놓았다. 한 장에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던데, 잘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동장군 축제에 우리 시에서도 늘- 도움을 주게 해 주세요."했고 다른 한 장에는 "우리 포천시의 모든 사람들과 우리 가족이 모두 부자가 되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썼다.
4시가 가까워 오자 사물놀이 소리가 들려와 축제 분위기를 더욱 즐겁게 했다. 포천중학교의 사물놀이 부 학생들이라고 하는데 농악놀이를 하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와 함께 행사 진행자의 사회로 내빈이 소개되고, 물결처럼 모여든 많은 사람들의 환성 속에서 우리의 소원 달집은 불이 되어 하늘 높이 빨간 불이 되어 피어올랐다.
축제장에 모여 있는 한 사람 한사람의 모든 소원이 불꽃이 되어 하늘에 닿는 것 같았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달집태우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이 이야기가 동장군 축제와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탈무드의 가문자랑이라는 이야기 중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던 기억이 난다.
"너의 집안은 너 하나로 끝이 나지만 우리 집안은 나로부터 시작 된다네. 나는 살아가는 방법이 중요 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얼마 전 어른들께서 경기도의 발전이 남부에 치우쳐있고 우리 포천은 발전이 안 되고 있다며 걱정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까지는 우리 포천시의 발전이 뒤쳐졌다고 하지만, 탈무드의 가르침에도 있듯이 우리 포천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동장군축제 준비위원들처럼 스스로 살아 갈 방법을 아는 포천 시민들이 있고 추운 날씨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시는 우리의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포천시의 앞날이 타오르는 달집처럼 밝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새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2009년 제 5회 동장군 축제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